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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질책·훈계보다 칭찬과 관용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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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질책·훈계보다 칭찬과 관용 먼저

입력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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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표정에 명랑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관용적인 부모 밑에서 인사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다.

무서운 부모 밑에서 훈계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인사를 해도 무표정하거나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관용과 칭찬을 통해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는 일은 질책과 훈계로 지도하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인내와 노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가 더 바람직한 이유는 아이의 자발성, 자존감, 행복감, 창의성 등 긍정적인 품성을 계발시키기 때문이다.

규칙과 규율에 순종하며 지시받은 일만 수동적으로 해내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과거의 엄격하고 냉정한 훈육방식을 고수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러나 창의적이고 지도력 있는 인간상을 원한다면 변화된 사회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관용과 칭찬’을 통한 자녀교육이 좋은 자질을 계발한다는 사실은 교육·심리·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에서 입증되었고, 서적과 매스컴, 평생교육 등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세간에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도 그 한 예이다. 한편 이 책은 사람들에게 칭찬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도 만들었다. 이런 저런 경로로 칭찬의 중요성을 깨달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칭찬을 남발하여 오히려 그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혹은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기를 꺾을까 염려하여 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언제 칭찬할까 고민하는 것은 칭찬을 어떤 수단이나 도구 또는 기술 정도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의도대로 조련되고 사육되는 동물이 아니다. 부모의 뜻대로 아이를 조종하겠다는 저의를 가지고 그 수단으로 칭찬을 활용할 요량이라면 차라리 그만 두는 편이 낫다.

칭찬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향기와 같다. 입으로만 건성으로 하는 칭찬에 대해서는 아이들도 감격하지 않는다. 깊은 애정과 진정이 담겨 있을 때라야 그것이 참 칭찬이 되는 것이고, 그런 칭찬을 들었을 때에는 아이들도 진심으로 기뻐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에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것은 아주 어린 아이들뿐이다.

‘늘 제멋대로이고 잘하는 일 하나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진심으로 칭찬하란 말인가?’ 하고 고민된다면 아이에 대한 칭찬의 기준이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칭찬할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신중함은 소심한 탓으로 보이고, 활달한 성격은 푼수처럼 비쳐지며, 착한 것은 용기가 부족한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잘나거나 못나거나 고만고만한 것이 아이들일진대 부모의 판단 잣대에 따라 싹수없는 놈이 되기도 하고 꿈동이가 되기도 한다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자세가 긴요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면 칭찬할 것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일의 일상을 큰 잘못 없이 꼬박꼬박 해내는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실수에 흠 잡고 야단치는 일은 빼먹지 않으면서, 칭찬에는 너무도 인색한 것이 우리네 부모들이다. 설령 아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꾸지람을 해야 하는 경우라도 칭찬할 거리를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쩌다가 다투게 되었니?"

"공부 못한다고 놀리잖아요."

"저런 그래서 화가 난 게로구나?"

"처음에는 참으려 했었는데……."

"그래? 훌륭한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야, 이놈아! 그러게 공부 좀 열심히 하지!"하고 조롱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행동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칭찬할 만한 태도나 마음씨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자식 사랑은 속으로 해야지 겉으로 표현하면 못 쓴다’라는 인식 때문에 직접 칭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얘야, 선생님이 너의 생활 태도를 얼마나 칭찬하시던지 엄마는 무척 기뻤단다"하는 식으로 제삼자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다.

역으로 부모의 칭찬이 선생님이나 이웃이나 친척의 입을 통해 전해지도록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간접 칭찬은 직접 칭찬 이상으로 커다란 격려가 되어 아이가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성취동기와 자발성을 길러준다.

말로 하는 칭찬이 어렵다면 눈빛으로라도 칭찬해야 한다. 그마저 하지 않는다면 진정 칭찬할 마음이 없는 것이고, 격려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反求諸身(반구저신)’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칭찬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야박한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볼 필요가 있다.

※反求諸身(반구저신): ‘그것을 나에게서 돌이켜보아 구한다’는 뜻.

신규진 서울 경성고 상담전문교사‘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저자

sir9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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