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토론되는 주제는 한·일 갈등과 중·일 대립, 그리고 동북아 균형자론 등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런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큰 편차가 있지만 한가지 공통된 것은 이슈의 중심 또는 배경에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정치지도자에서부터 평범한 배·사과농가에 이르기까지 무겁게 다가서는 중국의 영향력 앞에 서 있다.
동북아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국가 갈등 사태를 보면서 최근 보도된 세 편의 중국 관련 뉴스가 관심을 끌었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세운 리콴유는 7일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대학원 개소식에서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제성장률이 8~10%인 중국과 6~7%인 인도가 조만간 세계의 힘의 축을 바꿔놓을 것이다. 과거 중국과 인도는 아시아 공업국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나 이들을 따라잡고 있다.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는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다."
며칠 후 리콴유의 연설을 확인해주듯 아시아의 두 거인 중국과 인도가 손을 잡았다. 뉴델리를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총리와 싱 인도총리는 반세기 동안 갈등을 빚었던 국경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에너지 분야를 비롯해 광범한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동반협력 관계를 선언했다.
이어 12일에는 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에 대한 상원인준청문회가 열렸다. 장차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에 안게 될 네그로폰테는 여기서 " 우리의 자손들은 중국이 매우 강력한 국가로 부상한 세상에서 살 것이다" 라고 말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일찍이 문명 중심지의 서진설(西進說)을 주장한 바 있지만,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가들은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 또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임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서양의 비평가들은 중국의 부상을 지난 500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일어난 2대 세력균형의 변화에 비교하고 있다. 첫째 변화는 17세기까지 진행된 서유럽의 발흥이고, 둘째 변화는 남북전쟁에서 2차 대전 사이에 가장 중요한 국가로 떠오른 미국의 출현이다. 그리고 지금 거의 비슷한 규모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은 15년 이내에 중국 경제가 영국을 능가하고 30년 이내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 후 25년간에 걸쳐 마오저뚱의 정책은 중국을 황폐화의 길로 내몰았다. 그러나 그후 25년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된 끝에 중국의 경제규모는 영국을 추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올해 미국 경제학자들을 상대로 중국 경제가 총량에서 미국 경제를 앞서는 시기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향후 20~40년 사이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202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지정학적 중심축이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기울면서 나타난다는 것이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예측 결과다.
금세기 전반에 세계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진다는 전망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슴 뿌듯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과연 이 문명의 알맹이가 될 가치체계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함께 든다. 서유럽 문명이나 미국 문명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기반 위에 발달했지만 인본주의와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체계를 세워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 벌어지는 동북아의 민족주의 또는 국가간 갈등을 보면서 이것이 거대한 아시아 문명 탄생의 진통인지, 아니면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을 큰 싸움판의 서곡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중국의 통제체제에서, 일본의 편협성에서, 한국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시아에 통합의 씨를 발아시키고 세계에 기여할 가치체계를 찾는 일이 이제부터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다.
김수종 주필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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