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기 검사가 어린이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논란을 불렀다. 어린이도 엄연히 독립된 인격체로서 사생활을 침해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 일기 검사는 부당하다는 주장과, 교육상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조차 어린이들 자신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어른들끼리 떠드는 것 같다. 정작 어린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또 무엇이 진정 어린이를 위한 것일까.
국내 대표적 인권운동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이 쓰고,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가 펴낸 ‘뚝딱뚝딱 인권짓기’ 를 들춰본다.
"엄마가 내 일기장을 몰래 봐요. 남의 일기를 왜 보냐고 따지니까 ‘엄마가 너 걱정돼서 그러는데 좀 보면 어떠냐’고 하셨어요. 엄마가 너무 얄밉고 일기 쓰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졌어요." (238쪽)
이 책은 분명하게 답한다. ‘아무리 좋은 마음에서 나온 거라고 해도 일기장을 몰래 보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부모님이 허락없이 내 일기장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말씀 드리는 게 좋겠다,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지 궁금해 하시면 내용은 가리고 날짜만 보여드릴 수도 있겠다고.
이 책은 만화로 읽는 어린이 인권교과서다. 어린이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일러주고, 모든 사람이 인권을 고르게 누리려면 우리나라와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케 한다. 평등, 폭력, 환경, 교육, 차별, 놀이, 건강, 민주주의, 복지, 사생활 등 13가지 영역에서 어린이의 권리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다룬다. 주제는 심각하지만, 만화로 재미있게 엮어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모든 사례를 가정과 학교 등 어린이의 일상 가까이에서 뽑은 것도 장점이다. 예컨대 똑같이 지각을 해도 공부 잘 하는 친구는 별로 혼나지 않고 성적 나쁜 아이는 크게 야단맞는 일은 흔하디 흔한 차별이다.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따라야 할까, 어른들 앞에서 의견을 말하는 게 왜 종종 버릇없는 말대꾸로 비칠까 등등.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데 지친 아이가 놀고 싶어서 일부러 전염성 눈병에 걸리려고 애쓰는 것은 자유롭게 놀 권리를 잃어버린 요즘 아이들의 안쓰런 모습이다. 가난하다고, 심신에 장애가 있다고, 어리다고 해서 무시 당하거나 차별 받는 일이 부당한 것임을, 이 책은 똑 부러지게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고래가 그랬어’에서 연재물로 이 만화를 본 아이가 당돌해졌다는 부모들의 항의성 전화도 가끔 있다고 한다. 아이가 당돌해진 게 아니라 어른들 생각이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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