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권이다." "본분을 다할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공무원 차등정년과 사형제 폐지,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현안에 대해 잇따라 의견표명과 권고를 내놓으면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인권위는 "국가 차원의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이라며 차별이나 인권침해에 대해 의견표명을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지만, 권고나 의견표명을 받은 정부기관 등은 "인권위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인권에만 초점을 맞춰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며 인권위를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먼저 인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곳은 중앙인사위원회. 지난달 23일 일반직 공무원의 정년차등 폐지를 권고받은 중앙인사위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실질적 정년 연장인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향후 공무원 신규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수용불가 방침을 밝혔다.
이어 이달 6일 인권위가 사형제에 대해 폐지 의견을 표명하자 법무부가 "인권위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의견을 내느냐"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튿날 초등학교에서의 일기장 검사 관행이 아동인권 침해라는 의견을 냈을 때는 교육부와 시교육청, 양대 교원노조 등이 "일기장 검사는 초등학생들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들이고 글쓰기 훈련을 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경찰·소방·교정직·소년보호직ㆍ철도공안직 공무원 채용시 응시자격으로 키와 몸무게를 제한하는 것은 차별행위라며 해당 기관장에게 개선을 권고했을 때도 각 기관은 "신체접촉이 많은 업무특성상 일정한 신체요건 유지는 필수"라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인권위가 비정규직 관련법안에 대해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14일 정부와 재계의 반발이 폭발하면서 논란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15일 오전 주한 외국인 투자기업 경영자와 외국공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국회에서 노사정이 대화하고 있는 가운데 인권위가 왜 월권적인 행위를 했는지 의아스럽다"고 비판했고, 오후에는 ‘일자리 문제 해법 없나’라는 제목의 토론회에 참석해 "잘 모르면 용감해지듯 비전문가들이 단세포적 기준에 의해 월권행위를 한 것"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인권위의 권고나 의견표명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의견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아 출범 이후 현재까지 정부기관이 인권위의 권고나 의견표명을 수용한 비율이 약 92%나 될 정도로 실질적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보호라는 인권위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논란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표명이나 권고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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