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선씨가 관련된 유엔의 ‘이라크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은 걸프전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던 이라크가 식량이나 의약품 등 인도적 물품을 살 수 있도록 일정량의 원유수출을 허용해준 유엔의 특별 조치다. 유엔 관리 하에 1996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지속됐다.
지난해부터 원유수출 대금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불법자금으로 썼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며 유엔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대표적인 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아들인 코조 아난의 스캔들이다. 코조는 인도적 물품 선적과정을 검수하는 업체 선정과정에서 스위스의 코테크나에 특혜를 주고 1996년부터 2004년 2월까지 4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또 유엔 관리들이 업체선정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자체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러시아 프랑스 중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의 고위 인사들과 메이저 석유업체들이 연루돼 있다는 증언도 언론에 잇따라 보도됐다.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 석유회사로부터 가장 낮은 가격에 원유를 살 수 있는 거래권을 외국에 나눠주는 과정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거래권은 배럴당 10~85센트의 프리미엄을 붙여 전매할 수 있어 엄청난 이권이었다.
미국 정부는 후세인 정권이 이렇게 확보한 자금이 110억달러(약 11조원)에 이르며 대량살상무기를 구입하는데 이 자금을 썼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조사를 벌여왔다. 박씨도 이런 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켈리 연방검사는 "박동선씨가 중재한 조건으로 막대한 석유를 팔았다"며 "박씨는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받은 200만달러(약 20억원)의 상당 부분을 유엔 고위관계자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미국의 ‘유엔 때리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유엔에 불만이 많은 강경파 존 볼튼 국무부 차관을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지명해 유엔을 뜯어고치겠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보여온 아난 총장과 오랫동안 불화를 빚어왔다. 미 검찰의 칼날이 아난 총장의 측근에 다가갈 때 마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총장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박씨는 아난 총장의 측근인 모리스 스트롱 유엔 북한 담당특사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에 대한 추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유엔 고위관계자가 연루된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유엔과 아난 총장은 엄청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박씨의 입에 유엔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유엔은 박씨 등에 대한 수사발표에 대해 "오늘 기소된 사람 중에 유엔 관리는 없다"고 해명했다. 아난 총장도 "후세인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은 석유-식량 프로그램이 아닌 요르단과 터키에 석유를 밀수출해 번 것"이라며 "터키와 요르단이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이 눈을 감아주었다"고 역공을 가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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