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중남미 국가들의 홀로서기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북남미 블록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보가 잇따르는가 하면 유럽 중동 등지와 남남협력을 모색하는 독자적인 행보도 거세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좌파 국가가 이 같은 반미·탈미 외교의 중심축이다.
중남미 좌파의 좌장격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남미의 정치·안보 문제에 간섭하는 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기류는 베네수엘라와 미국과의 갈등에서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러시아 브라질 등으로부터 무기 수입을 강행하고 미국과 동맹국인 콜롬비아와 분쟁까지 벌이자, 미국은 역내 군사 불균형과 테러 위험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를 압박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14일 집권 3주년 기념 성명에서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제국주의 놀음에 장단을 맞춰서는 안되며 베네수엘라가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려는 것은 내정 문제이므로 미국이 간섭할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이웃 국가들에 독자 행보를 촉구했다. 그는 13일엔 미국의 가상공격에 대비해 100만 예비군 확대 계획을 승인했다. 베네수엘라는 여기에 더해 미국 압박용으로 대미 석유수출을 줄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브라질도 2월 베네수엘라와 정상회담에서 전방위 전략적 제휴를 선언한 뒤 베네수엘라의 편을 들어주며 남미 독자 노선을 강화했다. 지난달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남미 순방 당시 브라질의 고위 관리들은 베네수엘라 무기 구입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국민들의 자율적 결정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존중한다"고 미국의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좌파 의회가 중단시킨 미국과의 합동 군사 훈련이 아직 단절된 상태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에 대해서도 중남미권은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FTAA가 실현될 경우 북남미를 아우르는 8억명에 달하는 거대시장이 형성되지만 중남미권 경제의 맹주를 자처하는 브라질은 대신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회원국인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를 보다 강화하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과 중국, 중동지역 국가들과 경제적 연대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14일 독일 방문길에 지난해 10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EU와 메르코수르의 자유무역협정 협상 재개를 타진했다. 5월 예정된 중남미-아랍권 정상회담에서는 아랍-중남미 경제 블록 구축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남미의 독자행보는 룰라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안정을 이룬 브라질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룰라 대통령은 앙숙인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중재에 나서는 등 중남미 내부의 균열을 봉합하며 미국의 중남미 공략에 맞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을 위한 브라질의 공격적 외교도 이 같은 변화에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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