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병동에서 종종 영양 교육 의뢰가 들어옵니다. 대부분 신경성 거식증 환자들이 그 대상입니다. 이 환자도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경우였습니다. 환자는 키 162cm, 체중 40kg으로 정상체중의 71% 수준인 극저체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살쪘다고 생각하고 있어 병동복도를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운동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걸으면서 식사를 얼마나 했는지 물어보니 다른 것은 거의 안 먹으면서 하루에 우유만 800ml 정도 먹고 있었고, 가끔 과일을 한두쪽 정도 먹는 정도였습니다. 우유 800ml면 열량이 1,000kcal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한살된 아기들이 하루에 먹어야 하는 열량인 1,300kcal에도 못 미치는 양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음식을 먹으면 토한다고 하더군요. 다른 음식은 열량이 높아 살이 찐다는 강박관념에 먹으면 거북하고 토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 신경성 거식증은 사춘기 소녀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비만하다고 잘못 생각해 극도로 수척해질 때까지 굶는 심리적 장애입니다. 체중이 점점 감소하면서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고 가족과 친구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소녀들은 극심한 체중감소와 체지방 감소를 초래하게 됩니다. 체온과 맥박수가 감소하며, 빈혈, 백혈구 감소로 인한 면역력 감소, 월경중단과 같은 신체적인 증상도 동반합니다. 신경성 거식증은 심리치료와 함께 영양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정서적인 안정감과 함께 체중에 대한 강박관념을 줄이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절대로 억지로 먹게 해서는 안됩니다. 본인이 이해하여 먹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정확하게 주어야 합니다.
이 환자의 경우에 먹는 것이 우선 우유 밖에는 없었으므로 식품의 다양한 종류와 열량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근육이 소실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팽팽한 피부가 되려면 다양한 식품을 먹어야 한다고 알려주었고 동시에 다른 식품도 우유보다 열량이 많지 않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서서히 적은 분량의 다양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그리 살이 찌지 않음을 느끼면서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자 신체변화에 대해 알려주고 더 이상 체중이 감소되면 위험함과 적절한 체중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한 살 아기들도 1,300kcal를 먹는데 아기들보다 크려면 더 먹여야 한다고 인식하면서 하루에 200kcal 정도만 늘리는 것으로 해서 1주일 정도 증가시킨 후 다시 200kcal 정도를 늘렸습니다. 물론 이 과정 모두 환자와 협의를 하면서 서서히 늘려나갔고 환자도 정서적으로 안정돼 갔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상체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정상체중이란 자신의 키와 나이가 고려된 적절한 체중을 말하며, 대개는 키에서 100을 뺀 후 0.9라는 지수를 곱해 산정하며, 이 때 산정된 체중의 ±10% 범위에 속하면 정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체중이 줄면 의욕이 떨어지거나 면역기능이 저하돼 쉽게 질병에 걸리게 되고 또 잘 낫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체적인 성장 뿐 아니라 성적인 성장도 지연되며, 거식증 환자의 3~8%가 자살, 심장병, 감염 등으로 사망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정상체중의 85%도 안 되는 극저체중의 경우나 자신의 체중이 저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체중증가에 대해 염려를 하거나 무월경이거나 수개월간 월경이 없는 경우 등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신경성 거식증의 경우 우선은 더 이상은 체중 감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거식증이 일어나기 이전 체중의 80~90% 정도까지 회복될 때까지 일주일에 0.5~2kg 정도로 천천히 체중이 늘어나도록 해야 환자의 거부감이 적습니다. 가급적이면 지방 함량이 적은 식사를 하고, 하루에 6번의 식사로 소량씩 적응해 나가도록 하며, 한번에 많은 양을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회복기간에는 헛배가 부르거나 체온이 상승할 수 있으므로 잘 관리해야 하며, 배변이 잘 될 수 있도록 물과 섬유소의 적절한 섭취도 필요합니다.
풍부한 먹거리에 비해 지나치게 날씬한 몸매를 요구하는 모순된 문화의 공존으로 자칫 그릇된 가치관을 갖기 쉬운 사춘기에 정상적인 신체변화와 정상적인 체중, 올바른 식생활에 대한 기본교육을 통해 정상적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신경성 거식증을 예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조영연 삼성서울병원 영양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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