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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지도자의 사람쓰기

입력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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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현종은 우리에게는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그의 치세 44년은 전기(연호 개원713~741년)와 후기(연호 천보742~756년)로 극명하게 대조된다. 전기는 개원의 태평성대(開元之治)라고 불리며, 당 태종의 정관지치(貞觀之治)와 나란히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인구를 추정한 기록에 따르면 5,200만이 넘었을 것이라 하니, 그 성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비록 이 시기에만 해당하지만 인도의 제후들이 중국에 조공을 할 정도로 국력이 막강했으니 명실 공히 당대 세계 최고의 제국이었다. 이러한 당나라의 번성은 100여 년 동안 착실히 국력을 다진 데서 말미암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종 자신이 남다른 마음가짐을 가진 현군이었기에 가능했다.

현종 전기에 재상으로 중용된 사람으로 송경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사심이 없고, 황제의 잘못을 직언하여 태종 시대의 방현령과 두여회에 비견되는 사람이다. 그가 물러간 뒤에는 한휴라는 사람이 직언으로 임금을 보좌하였다. 그런데 현종은 연회를 할 때마다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걱정을 하면서 ‘한휴가 알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측근들이 보다 못해 "한휴가 재상이 되고 나서 폐하께서 여위셨습니다"라고 은근히 한휴를 비방하였다. 그런데 현종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여위어도 천하의 백성은 그 덕분으로 살찐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겠는가"라고. 참으로 가슴 뭉클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당나라의 번영과 현종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런데 오랜 평화와 번영에 익숙해진 현종은 점차 정치적으로 근엄한 마음가짐을 잃어갔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蜜腹劍)’는 평가를 듣던 이림보라는 자를 재상으로 발탁하고 나서부터는 국정은 난마처럼 얽히게 된다.

결국 안록산의 난(755년)으로 당나라는 끝없는 나락에 빠져 들었고, 다시는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왕조 시대에 임금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갈린 좋은 사례이다.

민주주의 시대라고 크게 다를까? 국가도 그렇고 기업도 조직도 비슷하지 않을까? 최고경영자(CEO)가 어떤 인물을 발탁하는가가 결국 그 조직의 성패를 상당 부분 가르게 된다. 한 고조 유방에게는 장자방이 있었고, 태조 이성계에게는 삼봉 정도전이 있었다. 요즘 고위직에 오르내리는 이들은 과연 송경이고 한휴일까?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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