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긴 터널의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6자 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상황은 오히려 더욱 악화하고 있다.
미국의 비타협적 자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북한은 미국의 강경입장에 기죽기는커녕 맞대응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 회담은 북한의 핵 포기만이 아니라 미국의 핵 위협 제거를 포함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인 방도를 논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제는 6자 회담에서 동결과 보상과 같은 주고 받는 식의 문제를 논할 시기는 지났다"고까지 했다.
이 담화 내용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6자 회담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한상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회담이 이루어질 경우 요구할 내용이지 회담 참가의 조건은 아니다"라고 밝히긴 했지만, 북한이 6자 회담에 쉽게 응할 것 같지 않다. 6자 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북한의 입장은 이전보다 강경해지고 협상조건도 크게 높일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전혀 협상의사가 없고, 당분간 대북 정책이 완화될 가능성도 없다고 본 듯하다. 6자 회담에 응해 보았자 일방적 양보만 강요당할 것이 뻔하고, 미국에 ‘6자 회담 무용론’의 빌미만 제공해 주는 꼴이 될 바에야 차라리 밖에서 버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장기전에 대비한 포석인 셈이다.
또 북한이 이런 강공을 계속하고 있는 배경에는 국제정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판단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군사적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도 중국이 반대하는 한 성공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란 핵 문제의 추세도 북한을 고무케 하는 요인이다. 이란은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태세이고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도 고수하겠다는 태도다.
대응 수준을 높여 놓고 미국이 변할 때까지 일단 버텨보자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 핵을 ‘협상용’이 아닌 진짜 ‘억지력’으로 전환하려는 생각도 했음직하다. 북한의 ‘벼랑끝 버티기’ 자체는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벼랑끝에서 버티는 것이 성공해야 무엇하겠나? "고난의 행군"이 북한에 가져다 줄 고통과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 경제가 다 파탄 나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남북관계가 결딴 난 채, 핵무기만 붙들어 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우선 남북관계를 복원하라. 중단된 장관급 회담을 재개하고 남쪽의 특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남한 국민들과 정부도 지쳐가고 있다. 북한에 호의적인 여론도 돌아설 수 있다.
북한에 오해 살 일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노무현 정부만큼 북한에 호의적이었던 정부도 없다. 소수 정권의 한계를 지니고 있던 김대중 정부보다도, 현 정부는 오히려 대북 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시도하고 대규모 대북 지원을 실시할 국내적 토대를 갖고 있다. 그런 기회와 명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남북 관계의 큰 진전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방지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일단 6자 회담에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주장에는 일견 설득력과 정당성이 있다. 미국의 양보나 정책 변화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회담에 복귀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6자 회담에 들어와서 정당한 주장을 펴고 미국의 잘못을 밝히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국제사회와 협상하라는 것이다. 남북이 모두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족공조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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