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저녁 서울 종로에서 한창 수다 중인 아줌마 셋을 만났다. "우리 남편이 오후 4~5시만 되면 출출하다고 하더라고요." "애들이 어린이집 갔다 오면 오후 시간이 비잖아요. 그때 뭘 하면 좋을까 생각했죠." "반상회 열 때 무슨 음식 내갈까 어찌나 고민이 되던지요…."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그게 다 일하는 얘기다.
장순화(35) 최위나(33) 임주연(30)씨.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의 아줌마 점장들이다. 입사 8, 9년차.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부터 시작했다.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했다. 부점장으로 승진한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매장에 나왔더니 청소가 안 돼 있었다. 양말을 벗고 대걸레로 매장을 밀고 다녔다. 힘들기는커녕 신이 났다고 한다. 4년, 5년, 6년 그렇게 ‘불타는 노력’ 끝에 점장이 됐단다.
베니건스는 전국 22개 매장 대부분이 남성 점장이고 아줌마 점장은 셋뿐인데 매출은 상위 5위권에서 빠지지 않는다. 연봉과 인센티브를 합쳐 1년에 7,000만~1억원 정도씩 번다.
아줌마라서 좋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손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기발한 마케팅으로 고객몰이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순화씨가 작년 초 종로점에서 시작한 ‘직장인 스낵 파티’는 출출해지는 오후 시간에 회사원들에게 간식을 배달하는 서비스. 회사원인 남편한테 그맘때면 간식 먹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내놓은 아이디어였는데 너무 인기가 좋아 전 매장으로 확대됐다. 인근 회사에서 간식 서비스를 사원 복지 프로그램으로 정례화하고 싶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목동점을 맡은 임주연씨가 아줌마들을 끌어모은 건 부녀회·반상회를 통해서다. 매장도 알릴 겸 베니건스 요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반상회를 찾았다. 반응이 좋아 목동 부녀회 곳곳을 돌아다니게 됐다. "아줌마라서 갈 수 있는 곳"에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최위나씨는 엄마 손님들이 오후에 아이들을 어디에서 놀려야 할지 몰라 걱정하는 걸 보고 유명 놀이교육 프로그램 업체에 연락했다. 교사가 매장에 교재를 갖고 와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베니건스 놀이학교’는 엄마들한테 인기를 모아 EBS에 방영되기도 했다. "아줌마들 입소문이 무섭다"는 걸 아줌마인 최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맡은 도곡점에서 다음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는 처음으로 결혼식이 열린다. 식사도 만들고 영상물도 제작하고 파티장으로 꾸미는 등 식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다.
바깥일 하랴 집안일 하랴 힘들지 않을까? 맏며느리인 최씨는 "설, 추석 연휴에 가정 대소사와 겹칠 때 일정 조정하는 게 약간 고민"이라고 했다. 두 살 난 딸이 있는 임씨는 "어린이 손님을 볼 때 집에 있는 우리 애가 보고 싶어지죠"라고 한다. 장씨가 "그래도 우리가 힘든 건 남자도 힘들고 우리가 편한 건 남자도 편한 것 아니냐"고 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일할 것"이라면서 아줌마 3인방은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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