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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싱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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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싱싱회'

입력
200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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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회를 먹다 보면 더러 거북할 때가 있다. 살점이 다 도려지고, 매운탕용 머리와 앙상한 뼈만 남은 생선이 자율신경계의 작용으로 몸을 떨거나 입을 여닫는 모습이 여간 끔찍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활어회를 즐긴다. 물고기가 죽어가는 모습에서 묘한 기쁨을 느끼는 악취미 때문이 아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는 말이 있듯 씹는 맛을 즐겨 온 습관 때문이다. 죽음 직후 조직이 굳는 ‘사후 경직’에 의해, 살아 있는 생선에서 떠낸 살은 유난히 단단하고 쫄깃쫄깃하다. 그것이 씹는 맛을 한껏 끌어 올린다.

■ 그러나 정말 회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활어회를 피해 왔다. 쇠고기와 마찬가지로 생선회도 ‘지나치게’ 싱싱한 것보다는 약간 시간이 흘러 숙성돼야 제 맛이 난다는 미식가적 고려도 작용했겠지만 위생 차원의 고려가 주된 이유였다. 바다나 양식장에서 건져 올려 수조에 담아 운반하고, 또 며칠씩 횟집의 수조에서 죽을 때를 기다리는 동안 물고기들은 많은 상처가 난다. 염증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넣어 주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예 조용히 잠재우기 위해 수면제, 심지어 마취제를 투입하는 예까지 있었다.

■ 그것이 인간의 지혜를 다듬어 주기도 했다. 1998년 봄 일본 오이타(大分)의 한 수산회사 직원은 침으로 물고기를 잠재우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얻었다. 이렇게 잠재운 ‘쾌면(快眠) 활어’를 공급하는 전문회사를 세워 성공을 거두었다. 죽은 듯 잠자는 활어를 수조 안에 차곡차곡 쌓아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 있어 운송비를 크게 줄인 데다 항생제나 수면제를 넣을 필요가 없어져 고객의 위생 우려를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침술은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먹을 수 있는 비법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 이런 지혜를 더는 갈고 닦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바다나 양식장 가까이서 손질해 냉장 숙성한 선어회의 보급에 해양수산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해진 품질기준에 맞는 선어회(鮮魚膾)에 ‘싱싱회’란 로고를 붙여 주는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고, 선어회 가공공장 건설도 지원한다. 선어회는 활어회에 비해 값이 싸고, 비브리오 패혈증 등 전염병 관리도 수월하고, 실제로 맛도 낫다. ‘씹는 맛’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미 쇠고기는 부드러운 것을 찾는 세상이고 보면 그 또한 오래지 않아 흐물흐물해 질 것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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