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겐 이름이 있다. 어디 사람뿐이랴. 동물, 물건, 상품, 회사….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도 있지만 대부분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만약 이름이 없다면 의사소통이 얼마나 힘들까. 끔찍하게 지겨운 기호학 강의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음악에 붙여진 이름들을 보자. 이른바 ‘표제음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무수히 많은 별명과 제목들이 사용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작곡가 자신이 붙인 제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리 홍보해도, 앞으로 그렇게 불리지 않을 확률이 거의 없다. 그 때문에 유명한 시작 부분을 듣는 모두가 운명의 노크 소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지만 말이다.
순수예술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에는 논란이 많다. 작곡가 자신이 특별히 붙인 제목이 아니라면 당연히 원래 의도대로 ‘작품 몇 번’ 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은 존중할 만 하다. 그래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고집하는 애호가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전통에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도 있다. ‘운명’이라는 제목이 선입견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덕택에 시작 부분 ‘빠바바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루는 검증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하다. 어려운 작품을 쉽게 접하게 만드는 작업이 바로 별명 붙이기라고 믿는다.
부작용도 분명히 있다. 상업적 의도로 붙여진 제목이 선입견을 준다는 것인데, 그것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하이든의 ‘태양 사중주’는 태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옛날 악보 표지에 태양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붙은 별명일 뿐이다. 하지만 작품번호보다 훨씬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니 결과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많다.
하이든은 제목 붙이기의 달인이다. ‘놀람’ ‘시계’ 교향곡 등은 대표적인 예다. 여기 아주 황당한 제목을 소개하겠다. ‘면도칼 사중주.’ 아마 한번 들으면 절대 잊혀지지 않을 제목일 것이다. 하이든이 면도날이 잘 듣지를 않아 불평하고 있을 때 영국에서 온 출판업자가 멋진 영국제 면도칼을 선물했다. 감격한 하이든이 그에게 멋진 사중주곡을 선물했다고 해서 붙여진 제목이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 일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설이 더 유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교장선생님’ ‘멍청이 교향곡’ 등 더한 것도 많이 있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는 최근 베토벤 현악사중주에 ‘팝콘’이라는 시대초월적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기발한 제목을 붙여보면 어떨까. 당신 덕분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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