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의 일본 외교-고이즈미 총리의 책임이 무겁다.’
12일자 아사히(朝日)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중국의 반일시위에 충격을 받은 일본 국내에서는 최근 고이즈미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언론 뿐 아니라 여·야 정치가들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외교 실패를 질타하며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부상하는 고이즈미 책임론 = 노다 다케시(野田毅) 전 자치성 장관은 최근 자민당 총무회에서 "외교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다. 인근 국가에 대한 배려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고이즈미 총리의 독선적 외교행태를 비난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차기 내각’ 외무장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가장 부족한 것은 애정"이라며 "이 점이 일본 외교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아사히 사설은 "총리 자신이 양보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에게만 성의있는 대응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면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문제 등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 사면초가 일본 외교 =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외교적 실책’이란 그가 2001년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 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일본의 외교는 엉망이 됐다.
이 때문에 일본의 주요 외교 현안도 벽에 부딪힌 상태이다. 일본이 염원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믿었던 미국의 반대로 사실상 실패한 상태이다.
지역 안보를 위해 힘을 쏟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참가국인 한국과 중국, 러시아와 역사 및 영토문제를 일으켜 난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 북한 외교도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당사국과의 관계 악화에 의한 외교 실패의 단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총리가 제공한 것이다.
◆ 수습 서두르는 일본 정부 = 교과서 검정 등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당초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던 일본 정부는 중국의 대규모 반일 시위에 충격을 받은 듯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서는 인상이다.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외무성 장관은 12일 이번 시위와 관련, 중국측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외교적 해결을 위한 대화에도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17일 예정된 중일 외무장관 회담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고이즈미 총리도 "대화로 풀겠다"며 양국간의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러나 11일 "이번 사태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반일감정이라는 것도 있다"고 반론했었다. 그의 고집으로 사태 수습이 길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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