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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KBS2 ‘열여덟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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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KBS2 ‘열여덟 스물아홉’

입력
200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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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열여덟 스물아홉’에는 두 개의 세상이 있다. 혜찬(박선영)의 몸이 있는 스물 아홉의 세상과 정신이 있는 열 여덟의 세상. 교통사고로 열 여덟 살 이후의 기억을 잃은 혜찬은 시할아버지(신구)로부터 아이 낳으라는 압력을 받는 유부녀지만, 남편 상영(류수영)을 여전히 ‘강뽕’으로 생각하고 떡볶이 먹는 것이 즐거운 소녀이기도 하다. 혜찬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지만, 동시에 두 세계를 모두 오갈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원작인 인터넷 소설에 열광하는 10대가 꿈꾸는 ‘환상체험’이다.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10대의 감수성은 학교를 넘어 그들이 선망하는 연예계 스타와의 부부생활로 확장되고, 반대로 학교 안에서는 멋진 남학생과의 로맨스가 기다리고 있다. 부부생활이란 실상 쉴 새 없이 티격태격하는 두 연인의 사랑싸움이고, 남녀관계는 결코 키스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은 10대의 눈높이에 맞춘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10대에게는 그 세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다.

‘열여덟 스물아홉’에는 어떤 책임도 없이 어른들의 세계를 맛보고 싶은 10대와, 10대의 풋풋함을 그리워하며 아직은 진짜 어른의 세계를 두려워하는 20대의 감성이 함께 녹아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 지점에서 현실의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10대의 환상과 20대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상영은 혜찬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느라 배역을 뺏기고, 인기 회복을 위해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그 와중에도 혜찬을 돌본다. 혜찬은 그런 상영을 통해 자신이 진짜 어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조금씩 성장해간다.

만화적인 감수성을 바탕에 깔고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해프닝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지만, ‘열여덟 스물아홉’은 어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순간만큼은 진지하다. 바로 이 점이 허황된 코미디가 아니라, 나름의 현실적인 고민과 갈등이 함께하는 드라마로 만든다. 이 드라마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이 균형을 잘 이어가느냐에 달려있다.

최근 이 드라마는 혜찬을 갑자기 방송 작가로 만들어 그의 무지를 보여주는 해프닝을 집어넣고, 혜찬의 첫사랑까지 등장시켜 애정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책임질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열여덟 스물아홉’은 현실과 이상의 두 세계를 마음껏 오가는 재미를 주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을 준다. 부디 판타지와 현실 사이 긴장감을 잃지 않기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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