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매각 작업이 잇따라 차질을 빚고 있다. 매각협상 막판에 ‘원점 재검토’로 선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쳐 가치를 높인 기업들에 대한 입질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매각 리스크도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일사천리식 헐값 매각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와 함께, 자칫 ‘곶감’만 내어주고 기업구조조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도 높다.
11일 대우정밀(옛 대우통신) 채권단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대우정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KTB 네트워크 컨소시엄’의 인수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채권단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30%의 지분을 참여해 KTB 네트워크 컨소시엄의 실질적 인수주체인 대우인터내셔널이 옛 대우 계열사인 것은 물론 채권단의 매각대상 기업이라는 점에서 인수에 부적격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03년12월부터 1년4개월 가량 진행돼 온 대우정밀 매각 작업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씨티그룹의 인수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인천정유 매각작업도 전면 재검토될 전망이다. 인천정유를 법정관리 중인 인천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이날 "6일까지 구속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기로 했던 씨티그룹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매각작업을 큰 틀에서 전면 수정하기로 했으며 1주일 안에 후속 절차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당초 1월 2차 입찰에서 6,851억원의 인수가를 제시한 중국 국영석유업체인 시노켐(CINOCHEM)에 인천정유를 매각할 예정이었으나, 최대 채권단인 씨티그룹이 인수가격을 이유로 반대하고 직접 인수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됐다. 씨티그룹은 그러나 2개월 간의 실사 후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3년부터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매각입찰 공고를 3번이나 냈던 법정관리기업 동해펄프는 1월 마지막 매각협상이 무산된 이후 결국 상장폐지 운명까지 맞았다. 채권단의 가격요구 조건이 높아 미국계 매틀린패터슨펀드와의 매각 본계약 협상이 결렬된 이후 채무재조정을 통한 독자 생존이 추진됐지만 결국 벽을 넘지 못했다.
역시 법정관리 기업인 오리온전기도 가격 이견으로 매각이 위태로운 상태다. 세계 6위의 브라운관 업체인 오리온전기는 지난해 12월 매틀린패터슨펀드와 1,200억원에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지만, 최대 채권자인 서울보증보험이 실제 기업가치보다 낮다며 헐값 매각 시비를 제기하며 제동을 걸었다. 서울보증보험은 3주 동안 오리온전기에 대한 기업가치 산정 작업을 벌인 뒤 27일 매각에 대한 동의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혀, 아직 매각 성사 여부를 단정짓기 어렵다.
SK생명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미국 메트라이프도 지난달 정밀 실사까지 마친 후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노조문제를 비롯한 여러 쟁점 사안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메트라이프 측의 설명이다.
정부나 채권단의 자의든, 혹은 협상 상대방의 타의에 의해서든 번번이 기업 매각이 막바지에 좌초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SK생명과 오리온전기 매각 과정에서는 기술이나 정보유출 시비가 일었다"며 "시간에 쫓겨 자격 미달 업체에 헐값에 매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맹이만 내주고 기업구조조정은 지연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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