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414년)보다 150년 가량 앞서 가장 오래된 고구려 명문(銘文)으로 보이는 국보급 유물이 공개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기사 30면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은 11일 공사창립 30주년기념 특별전시회(14일~10월29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동천왕(재위기간 227~248년) 사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벽비(壁碑·무덤 내부 벽에 부착한 묘비)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벽비는 점토판에 무덤 주인공이 위(魏) 관구검( 丘儉)의 침입 당시 세운 공훈 등 역사적 사실을 총 290여자로 새겨, 중국 사료들보다 더 풍부한 역사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이 벽비는 1930년대 평양에서 출토돼 한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해 온 것이라고 박물관측은 덧붙였다.
벽비의 명문은 고구려와 위와의 관계, 특히 위 관구검의 고구려 침입을 전후한 시기의 미묘한 동북아 정세를 추정케 하는 귀중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東主高麗 東川王 十一… 王詔 峴晛宮 三太邑長 入漢魏 步騎二百回都’는 ‘동천왕 11년…왕이 현현궁(태자나 궁의 이름)과(또는 으로) 삼태읍장(당시 고구려의 직위)을 불러 말하기를 위나라로 기병 200을 들여보냈으니 도읍을 잘 돌아보고…’등이다.
명문에는 고구려의 이체자(異體字)나 이두 형태로 표기된 고유명사 등이 다수 포함된 데다 전후 맥락도 규명해야 할 대목이 많아 정확히 전체 의미를 파악할 수 없으나, 해독 작업이 완료될 경우 고대 동아시아 관계사와 고구려 문화사 등을 새로 써야 할 정도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또 이 벽비가 진품으로 판명되면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틀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 자료가 된다. 박물관측은 고대사 및 고고학, 한학, 서예학 등 분야별 전문가 20여명에 자문, 진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물관 심광주 실장은 "호주 울롱공 대학에 열형광분석을 의뢰, 제작시기가 780±90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며 "이 분석기법은 유물이 빛에 노출되면 연대가 크게 낮아지는 특성이 있어 실제 제작시기는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최소한 이 유물이 위조품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노태돈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유물의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가치를 판단하기 이전에 진위 판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진품으로 확인될 경우 한국 고대사 학계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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