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이튿날인 9일 로마 교황청은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본격 채비에 들어갔다. 추기경단은 9일 회의를 갖고 18일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까지 언론과 접촉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호아킨 나발로 발스 교황청 대변인은 "콘클라베를 위해 추기경들이 묵언과 기도의 시간을 갖기로 했으며, 이날 회의에 참석한 추기경 130명이 만장일치로 언론과 인터뷰 및 접촉을 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언론 접촉 금지는 전례 없는 조치다. AP통신은 "차기 교황 후보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교회 내 개혁과 보수간의 긴장에 관심이 몰리면서 갖가지 억측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바티칸의 함구령에도 교황청의 차기 구도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직계, 이탈리아 진영, 중남미 진영 등 세 그룹의 경쟁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온갖 하마평이 무성하지만, 외신들은 요제프 라칭거(78)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과 클라우디오 우메스(70·브라질) 상파울로 교구 대주교, 디오지니 테타만치(70·이탈리아) 밀라노 교구 대주교 등 3명으로 후보군을 압축하고 있다.
8일 장례 미사를 집전한 라칭거 추기경은 최근 바티칸을 실질적으로 이끌며 교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 ‘요한 바오로 3세’로도 불린다. 1981년 현직에 임명된 뒤 24년간 요한 바오로 2세를 보필하며 동성애, 피임, 여성 성직자 임용, 해방신학 등에 반대해온 정통 보수파다. 학식 신앙 인품 등에서 고루 호평을 받으며 바티칸 행정 관리형으로는 최적의 후보로 꼽히나, 나이가 걸림돌. 77년 추기경이 됐으며,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하지 않은 3명의 추기경 중 한 명이다.
차기 교황이 비유럽권에서 나온다면 선두주자는 우메스 대주교다. 전세계 신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남미를 비롯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가톨릭이 급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5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점도 장점. 독일 이주자의 아들로 75년 상파울로의 노동자 거주지역 주교가 된 뒤 군부 독재에 저항하고 파업노동자를 지원하며 주목 받았다. 그러나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에 반대하는 등 교리에 관한 한 바티칸을 따른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교황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테타만치 대주교는 이탈리아 출신 교황의 전통을 되살릴 유력 후보다. 이탈리아가 단일 국가로는 교황선거인단에서 가장 많은 20명을 확보한 점도 낙관적. 요한 바오로 2세의 노선에 충실하며 중도보수로 평가되지만, 노동계급 출신으로 2001년 이탈리아 제노아 G8 정상회담 당시 반세계화 강론을 하는 등 진보적 측면도 있다. 최근 교회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른 생명윤리에 관한 책도 출간하는 등 전문 식견도 갖췄다는 평이다.
한편 나발로 발스 대변인은 콘클라베에 80세 이하 추기경 117명 중 115명만 참석한다고 확인했다. 불참을 결정한 하이메 신(필리핀), 알폰소 안토니오 수아레즈 리베라(멕시코) 추기경은 와병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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