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륙의 끝이자 유럽의 관문인 터키. 동서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한 이 먼 나라의 국민들이 요즘 한껏 들떠 있다. 한국 대통령의 국빈방문(14~17일)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가수반의 터키 방문은 1957년 국교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 방문을 앞둔 8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터키대사관에서 셀림 쿠네랄프(54) 주한 터키 대사를 만났다.
귀한 손님 맞이를 위해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는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도 가까운 한국과 터키의 역사에 새 장이 열리게 됐다"며 "한국전쟁 때의 혈맹 이상으로 양국 관계가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_노 대통령을 맞는 소감은 어떠십니까?
"매우 기쁘고 흥분됩니다. 외무부 장관실에 근무하던 1982년 당시 케난 에브렌 대통령을 수행해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23년 만에 한국 대통령이 답방을 하는 셈이지요. 한국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터키 국민들도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터키와 한국은 정서적으로 가깝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렇게 느끼십니까?
"대사로 부임한 지 2년 3개월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왠지 친척 같은 느낌이 들고 다른 나라 같지가 않습니다. 우선 언어의 뿌리가 같지요.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이어서 주어 목적어 술어 순의 문장구조가 비슷합니다."
-대사님도 한국어를 잘 하시나요?
"게을러서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읽을 줄 압니다. 한글은 정말 훌륭합니다. 배우기가 너무 쉬워요. 요즘엔 차를 타고 다니면서 거리 간판을 소리 내 읽는 게 취미입니다. 뜻은 잘 모르지만요."
한글 인쇄물을 읽어보라고 하자 발음은 약간 어색하지만 술술 읽어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언어 외에 두 나라는 정말 닮은 점이 많은가요?.
"사람들의 기질이나 관습도 상당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화를 잘 내고 직설적입니다. 그런데 화를 잘 내는 것은 한국인이 한 술 더 뜨는 것 같습니다.(웃음) 부모나 웃어른을 공경하고 대가족을 이뤄 사는 문화도 비슷합니다. 터키에선 젊은 자녀는 아버지 앞에서 담배도 함부로 못 피웁니다."
-터키는 한국전쟁 때 한국을 도운 혈맹이기도 한데….
"터키에서 한국은‘칸 카르데스(피의 형제)’로 통합니다. 한국전쟁 때 터키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1만5,000명이 참전해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하지만 많은 터키인들은 할아버지나 아저씨한테 들은 옛날 한국이 전부인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터키에서 활발히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스탄불 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70~80%는 삼성, 현대가 일본 기업인 줄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LG는 유럽 회사로 알지요. 그만큼 한국의 경제성장이나 현실에 대해 터키인들이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인지 우리에게도 터키는 여전히 생소한 편입니다.
"노 대통령의 터키 방문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호를 더욱 증진하는 데 큰 발판이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한국 TV 인기 드라마들이 터키에서도 방영됩니다. 터키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매년 20~30%씩 급증하고 있습니다. 작년만해도 5만7,000명이 터키를 다녀갔어요. 두 나라는 정서적·문화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교류만 자주 하면 엄청난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양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인 경제협력 강화 방안은 무엇입니까?
"터키는 역동적인 나라입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9.9%로 산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에게도 기회를 안겨 줄 신흥시장입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 시장 규모는 훨씬 커질 전망입니다. 터키는 지난해 한국으로부터 23.5억 달러어치를 수입한 반면 수출은 1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교역 규모를 늘리는 것과 함께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큰 숙제입니다."
-이슬람 국가라는 점이 EU 가입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보도가 많은데….
"터키는 인구의 96%가 이슬람교도이지만 율법으로 통치하는 폐쇄적인 이슬람 국가가 아닙니다. (벽에 걸린 대형 초상화를 가리키면서) 오늘의 터키를 세운 국부(國父) 케말 파샤(1881~1938)는 정치와 종교를 완전히 분리한 ‘세속주의’로 이슬람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터키의 저력이지요."
쿠네랄프 대사는 노 대통령 영접 준비를 위해 9일 낮 부랴부랴 터키로 돌아갔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조윤정기자 yjcho@hk.co.kr
● 쿠네랄프 대사는 누구/ 한국생활 3년째…사찰 즐겨찾아
"한국은 첫 인상이 좋았어요.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괜히 끌리는 거 있잖아요."
셀림 쿠네랄프(54) 대사는 2003년 1월 대사로 부임한 이후 ‘터키의 관습이나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생활을 음미하며 산다. 주말이면 채식주의자인 부인(45)과 전국의 유명 사찰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게 취미.
체코 프라하 태생인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다. 1973년 명문 런던경제대학(LSE) 졸업 후 외무부에 들어가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을 두루 거친 ‘유럽통’이다.
한국 대사 재임 중 레젭 타입 에르도안 총리 방한(지난해 2월), 반기문 외교부 장관 터키 방문(작년 4월)에 이어 이번 한국 대통령 국빈방문까지 ‘빅 이벤트’를 성사시켰다. "정말 경사가 겹쳤습니다. 모든 일이 형제나라 한국에서 생긴 일이지요. 그래서 더욱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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