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에 관하여 전혀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한 가지 점에서는 똑 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 두 이념 모두 노사관계를 적대적 갈등관계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좌파 교수 수십 명은 한 달 전에 성명서를 발표하여, 민주노총에 노사정 협의에 참여하지 말고 계속 강경 투쟁하라고 권고했다. 반면에 신자유주의는 기업들에게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두 이념 모두 교조주의다. 이념도 교조주의로 흐르면 미신이 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단기적으로 보면 분배 문제에서 대립되는 입장에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계급은 상호의존적이다. 근로자 없이 자본가가 기업을 운영할 수 없으며, 기업 없이 노동자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두 계급이 협력하여 나눌 몫을 키우면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
여성과 남성, 장교와 사병,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대적인 면과 아울러 보완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 인간관계에서 적대적인 면보다는 보완의 면을 증대시켜 상생의 관계로 발전시켜 온 것이 인류문화의 발전과정이다. 선진국 예를 보면 19세기 말까지 노사관계는 일반적으로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래 특히 20세기 복지국가 단계에 들어와서는 노사관계는 상생의 관계로 발전해 왔다. 미국의 경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이전에는 기업 임원의 초고액 봉급이나 심한 빈부격차가 사회적으로 별 문제가 아니었으며, 노동자의 권익은 거의 보호받지 못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어 초고액 연봉이나 심한 빈부격차를 부끄러워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다시 역전시킨 것이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이다. 초고액 연봉은 지탄이 아니라 자랑의 대상이며, 빈부격차는 당연한 일이며, 노동자는 단지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생각이 다시 등장했다. 이런 풍조가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에도 만연해 있다.
사람은 결코 기계가 아니다. 자존심과 분노를 느끼는 가슴도 있고, 자신의 이익을 강구하는 머리도 있다. 이전에는 외국인들이 놀랄 정도로 내부자 비리가 없던 우리나라 금융기관에서 구조조정이 대거 시행된 이후 거액의 내부자 비리가 빈번해지고 있다.
요즘과 같은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기업에 대한 근로자들의 애정은 더욱 중요하다. 화력에서 비교할 수 없이 막강한 미국이, 국민들이 애국심으로 단결한 베트남에게 패배한 것처럼, 기업 간 전쟁에서도 종업원들의 기업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이 승패를 좌우한다. 또한 요즘처럼 육체노동력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지식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열성 없이 지식을 활용하고 정보를 지키기는 어렵다.
근로자들의 자발적 열성을 끌어내는 한 방법이 기업을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근로자들을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소중한 가족으로 대우하여 근로자들로 하여금 기업에서 생활의 안정과 보람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경영방법을 도입하여 놀라운 성과를 내는 기업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여럿 나타나고 있다. 기업공동체를 운영하는 구체적 방법은, 종업원지주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형태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신뢰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므로 공동체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이전에는 마을이나 대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이후에는 이런 공동체가 사라져 사람들의 생활이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의 역할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직이 기업이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전형적인 함께 사는 삶의 터전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