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피력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도 모호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참여연대는 8일 ‘한국의 균형자 역할, 동북아 평화정착의 대안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상정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금지헌법 개정을 지원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에 기초해 동북아 분쟁을 방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2월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을 비롯해 모두 4차례에 걸쳐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고,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토론의 발제자로 나선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정책실장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미일과 중국의 정면충돌을 막아보고자 하는 인식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미일동맹과 미군의 동북아전략에 대한 중대한 변경이 없는 한 제3의 입지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은 동북아에서 군비증강이 이뤄질 경우 가장 불리한 나라인 만큼 군축을 선도함으로써 ‘평화의 교량자’ ‘분쟁의 조절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경주 인하대 교수는 "노 대통령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국은 이미 이라크 등 동북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원치 않는 분쟁에 휩쓸려 있다"며 "동북아에서만 평화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이중 기준이 대외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을 갖게 될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도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은 성립될 수 없는 목표라고 전제하면서 "국민적 합의 없이 즉흥적으로 동북아 균형자, 평화번영정책 등 외교적 수사를 앞세우는 경향이 외교 안보에서의 정책실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준형 한동대 교수 등 일부 토론자는 "노 대통령의 균형자 역할론은 미일동맹의 강화, 북핵위기의 고조, 중국의 군비확장 등 긴장된 동북아 정세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나타난 것"이라며 "내용이 미숙했다는 문제점은 제기할 수 있지만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제 목소리를 낸 것은 평가를 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줄 것을 주장했다.
한편 2월 출범한 보수단체 자유지식인선언도 이날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에 대해 다른 의미에서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자유지식인선언은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민주화·산업화·선진화에 기여해왔으며 국가 존립과 발전의 축"이라며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이 한미동맹을 해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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