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교황 장례식/ 세계 정상 한자리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교황 장례식/ 세계 정상 한자리에

입력
2005.04.09 00:00
0 0

8일 열린 교황의 장례식은 단순한 조문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정치·외교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장례식에는 세계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교황의 업적에 걸맞게 200여명의 지도자가 모였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지도자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1910년 에드워드 7세 장례식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국왕이 4명, 여왕이 5명, 전·현직 국가 원수와 총리 등 정상급 지도자만 70명이상이 자리했다. 한국에서는 이해찬 총리와 김수환 추기경 등이 참석했다.

그러다 보니 영토 무역 등 갖가지 문제로 평소 으르렁대던 앙숙도 한 자리에 모였다. 미국으로부터 ‘폭정의 전초기지’로 비난받아 온 이란과 짐바브웨, 적대국인 이스라엘과 시리아 정상이 교황의 시신 앞에 나란히 앉았다.

교황청은 이 같은 미묘한 관계를 감안, 프랑스 알파벳으로 자리 배정을 하는 등 서로 껄끄러운 상대를 떼어놓으려고 많은 신경을 썼다.

교황청은 "프랑스어는 외교용어로 널리 쓰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어 알파벳으로 할 경우 이란(Iran)과 이스라엘(Israel)의 정상이 아일랜드를 사이에 두고 앉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다.

각국 정상들의 속마음도 제각각이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역내 회원국 여행을 금지하는 제재를 받고 있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장례식 참석을 이유로 제재를 무시한 채 슬그머니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 여기에는 최근 부정시비가 거세게 일고 있는 자국 총선 결과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꼼수가 담겨 있다.

다음달 5일 총선을 앞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는 공식 외교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한 국내 규정에도 불구, ‘특별한 장례식’을 들어 바티칸행을 강행했다. 장례식 조문외교를 이용, 자신과 집권 노동당의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다급한 마음으로 로마에 왔다.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대만과 수교를 맺어 온 교황청이 대만과 단교하고 대신 중국과 손을 잡을 움직임을 보이자 교황청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교황청의 수교 움직임을 내심 반겼던 중국은 천 총통의 기습적인 바티칸 행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중국 당국은 단교 후 처음으로 천 총통에 통과비자를 내준 이탈리아 당국에 항의하며 바티칸에도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장례식을 서방 정상들과 ‘집단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절호의 외교기회로 삼겠다는 자세다.

장례식장의 가장 확실한 스타는 역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와 악수하는 사진을 찍으려는 정상들과의 일정으로 부시 대통령의 바티칸 체류시간은 물샐틈 없이 빡빡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