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는 3시간만 연습하면 입이 부르튼다는 것과 연주하며 웃을 수가 없다는 것, 그게 독특하죠. 하하." 하모니카 연주자 이혜봉(63)씨는 말을 끝내자마자 호탕하게 웃었다. 말 할 때는 생기가 돌았다. 밝고 젊었다. ‘하하하’ 크게 많이 웃어서인지 피부도 탱탱했다. 에너지가 느껴졌다.
"일곱 살 때 6·25 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사촌형이 하모니카를 갖고 있었어요. 삑삑 소리나는 게 참 신기했어요. 형 몰래 불기를 며칠, 달라고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안 줬어요. 그러던 어느날 딱 일주일 줄테니 노래 한 곡을 연주해보래요. 그러면 준다고. 미친듯이 연습했죠.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설픈 나의 첫 무대가 열렸어요." 관객은 사촌형과 어머니 단 둘이었단다.
연주중간에 형은 ‘야, 그거 학교종이 땡땡땡 맞아? 안 되겠다’라며 돌아서더란다.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한번만 더 하겠다고 사정해 겨우 얻은 또 한번의 기회. "첫번째 연주보다는 나았죠. 턱걸이 합격! 하하."
하모니카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학창시절에는 하모니카만 들면 ‘딴따라 되려고 그러냐’며 어머니한테 얻어맞기 일쑤였고 결혼하자마자 한 달 내내 하모니카만 불고 10만원 벌어와 아내를 속상하게 했다. 어머니의 성화로 경희대 법학과를 마쳤지만 그 쪽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하모니카를 불며 먹고 살기위해 당구장과 카페 등 사업을 병행했다. 그가 한 사업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는다."때려치우려고 하모니카를 구석에 넣어뒀다가도 며칠 만에 자꾸 손이 가더라고요. 이 놈들이 아주 매력적이거든요."
하모니카로만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음색과 음역을 갖춘 하모니카는 호흡의 강약과 혀의 움직임, 입 크기의 조절, 손 잡는 모양에 따라 애잔하고 우수어린 소리부터 신나는 행진곡까지 수천 가지의 소리를 낸다. 네 구멍을 가진 엄지손가락만한 것부터 구멍 192개의 장코드 하모니카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150가지가 넘는다. 종류별로 알토, 소프라노 등 제각기 역할도 다르다.
그가 수집한 하모니카는 2,000여 개. 이씨는 노래 한 곡으로 몇 십가지의 느낌을 낸다. 하모니카에서 피아노 소리가, 기차 소리가, 하프 소리가 났다. 2.5cm 길이의 하모니카는 입안에 절반은 넣은 채 불어댔다. 수도공고 재학시절 하모니카 잘 부는 선배를 6개월 쫒아다녀 겨우 1년간 기본이론을 체계화하고 그 후론 줄곧 혼자 불면서 연구했다. 새로운 실험이 곧 테크닉이 됐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주법 20여가지에 그가 개발한 주법까지 합치면 40가지가 넘는다.
이번 공연에서 이씨는 가곡 ‘가고파’,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가요 ‘칠갑산’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 15곡을 선보인다.
"그 동안 발표회 형식의 공연은 수없이 많이 가졌지만 정통 클래식 공연장에서 단독공연은 56년만에 처음이네요. 설렙니다. 하모니카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꿈이 있어요. 뭐냐고요? 5층짜리 ‘하모니카 회관’을 만드는 것. 후배도 양성하고 그곳에서 국제 하모니카 축제도 개최하고…."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독주회는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며 이날 로비에는 그가 수집한 하모니카 중 200여 개가 전시된다. (02)761-1587
글 조윤정기자 yjcho@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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