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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2026년 4월, 대한민국

입력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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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의 어느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반백의 노인과 청년 수만 명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각각 국민연금법 개정안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국회가 평균소득의 45%인 급여율(타는 돈)을 40%로 낮추고 보험료율(내는 돈)은 15.9%에서 20%로 크게 인상하려 하자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 노인들은 "늙은 것도 서러운데 연금 삭감 웬말이냐"며 갈라진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젊은층은 "노인봉양에 가장들도 거덜났다"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경찰은 3일 동안 계속된 시위에서 양측이 충돌해 수백 명의 부상자가 생기자 초비상사태에 돌입했다.

국민연금은 파산이 예고된 상태다. 4년 후면 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당초 예상했던 2030년 중반보다 4~5년 앞당겨졌다. 표를 의식한 역대 정부들이 ‘저부담 고급여’ 구조를 깨지 못하고 시한폭탄 돌리기를 계속 해온 때문이다. 관련부처에서는 국민연금 폐지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올 들어서는 고율의 보험료를 견디다 못한 30~40대 직장인들이 납부 거부운동에 나섰다. 보험료는 지난 20년 사이 6차례나 인상됐으나 급여는 두 차례 밖에 내리지 않은 탓이다. 그 배경에는 노인 단체인 ‘한국퇴직자협회’의 로비가 작용했다. 평균수명이 88세로 높아지면서 노인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최대의 압력단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초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노인이 1,000만 명을 돌파,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경제계와 노동·시민단체에선 연금보다 외국인의 이민허용 여부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다. 노동력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을 허용해달라고 경제계가 아우성치자 부작용을 우려한 시민 단체들이 반발해 벌써 몇 달째 정부와 정치권에서 줄다리기다. 대세는 이민 수용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도저히 2005년 당시에 비해 무려 30% 가량 줄어든 생산가능인구(15~64세)를 충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공무원과 기업체 정년을 64세로 연장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80%대로 크게 높아지면서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 하지만 3D 업종은 일손을 구하지 못해 줄 도산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고령인력 증가로 주력업종이 급속히 늙어가고 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고령화 쇼크가 20년 전부터 충분히 예상됐지만 이를 막지 못한 것은 출산장려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육아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육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여성인력 채용을 확대하는 등 가족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베이비 스트라이크(Baby Strike, 출산파업)의 또 하나의 요인인 교육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출산율이 0.99명으로 거의 모든 가정의 자녀가 한 명에 그치자 교육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명문대를 향한 욕구와 학벌주의는 심화하고,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했다.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여성들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들은 "돈 몇 푼 줘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고 실토한다.

국가 재정은 6년 전부터 재정적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최대의 소비층으로 떠오른 노인들은 돈을 쓰느라, 젊은층은 노인들을 부양하느라 저축을 외면한지 오래다. 기록적인 저축률 감소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비용, 낮은 생산성으로 지난해 재정적자는 GDP의 3%를 넘었다. 이 때문에 저성장구조가 고착화해 경제성장률은 1%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로 전락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요즘 한국 특집을 싣기에 바쁘다. 표지 제목은 ‘고령화에 신음하는 한국’ ‘아시아의 용, 성장을 멈추다’ ‘활력을 잃은 나라-한국의 교훈’ 등 한결같이 고령화 사회를 맞는 데 실패한 모습을 다루고 있다. 고령화 쇼크에 대해 경종이 울렸던 2005년 정부와 정치권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은 대가는 너무도 참담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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