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멀리 바다 위에 가물가물 갈매기떼가 나는 것이 보였다. 레인보워리어(Rainbowwarrior)호 갑판에서 고래를 관찰하던 호주 해양생물학자 리비씨가 선수를 돌릴 것을 지시했다. 한참동안 전속력으로 바다를 가르던 배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긴부리참돌고래였다. 3월 30일에 포항에서 출항한 지 이틀 만에 만난 돌고래들은 그린피스 대원들에게 인사라도 하듯 공중을 뛰어오르며 재롱을 부렸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돌고래의 향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500mm 망원렌즈를 들이대는 순간 돌고래들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벌써 배 앞에까지 와있던 것이다. 돌고래들은 배가 만들어내는 파도에 몸을 싣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동해에도 고래가 산다." 당연하지만 확인하지 못했던 이 사실을 목격하자 눈앞에 펼쳐진 동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고래가 살까’ 하는 의문은 이내 ‘과연 얼마나 많은 고래가 이 바다에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기자는 3월 18일 우리나라에 온 세계적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의 레인보워리어호에 한국 기자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 6일 간 동승해 이들의 동해 고래탐사를 취재했다. 그린피스가 한국에 온 목적은 5월 말 울산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를 앞두고 동해안의 고래 생태조사와 고래 보호 캠페인을 위해서다. 대원들은 한국 언론이 그린피스의 방문을 포경을 막는 국제적 환경단체와 포경을 원하는 국내 어민들 간의 싸움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린피스가 원하는 것은 깨끗한 바다와 풍족한 어족이며 이런 맥락에서 결코 어민들의 적이 아니라 동지와 같은 관계라고 말했다.
항해 도중 고래가 나타나면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던 대원들은 바로 갑판 위로 모였다. 멀리 보이는 고래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이처럼 인사를 하는 대원들에게 고래들은 화답이라도 하듯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고래떼가 지나간 뒤 대원들은 고래를 만났다는 기쁨에 선상 바베큐파티를 열었다. 배는 시동을 멈추고 돛을 편 뒤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린피스의 해양캠페인 담당 짐 윌킨스는 기자에게 "고래는 바다 생물을 대표하는 외교관 같은 존재다. 고래가 많을수록 그 바다는 다양한 종이 서식하는 건강한 바다" 라고 말했다. 기자는 눈앞에서 고래를 보았다. 동해에는 고래가 살고 있었고 그래서 희망도 살아 있다.
사진·글=조영호기자 voldo@hk.co.kr
● IWC와 우리나라 고래잡이/1986년부터 상업포경 금지 울산 장생포항 쇠락의 길 걸어
국내외적으로 고래잡이(捕鯨·포경) 재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가 5월 27일부터 6월 24일까지 울산에서 59개 회원국 8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고래자원을 합리적으로 보존 관리해 포경산업을 질서있게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1946년 설립된 IWC에 우리나라는 1972년 가입했다. 총회는 매년 열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1982년 IWC 총회는 1986년부터의 상업포경 일시정지(모라토리엄)안을 통과시켰고 이것이 계속 국제적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등 포경지지 국가와 미국 영국 호주 중심의 포경반대 국가가 계속 대립하고 있다. 1900년대부터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번성했던 울산 장생포항은 이후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어민들은 늘어난 돌고래들이 오징어 멸치 정어리를 엄청나게 잡아먹고 어업도 방해하고 있다며 제한적 포경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IWC의 포경금지 대상에 돌고래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우리 정부는 수산업법에 의해 돌고래잡이를 금지하고 있다. 현재 동해 연안의 고래자원을 정밀조사 중인 정부는 돌고래에 대해서는 솎아내기 포획을 허용할 것을 검토 중이나 당장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환경단체들은 어민들이 고래를 불법포획하고 동해안 고래가 멸종위기라며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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