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포털 사이트에서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유망 직종을 묻는 설문을 돌렸다. 그 결과란,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놀랍게도 의사나 디자이너가 아닌 푸드코디네이터를 1위로 꼽았던 것. 푸드코디네이터 혹은 푸드스타일리스트란, 음식을 좀 더 맛깔나게 담고 꾸며주는 이들이다. 언뜻 들으면 음식 담는 직업이 무어 그리 대단할까 하겠지만,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식품 광고만 손을 꼽더라도 그 수요는 엄청나다. 같은 상품이라도 더 맛있어 보이게, 더 고급스러워 보이게 꾸미느냐 마느냐가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손에 달렸으니 그들의 인기가 높아질 수밖에.
◆ 한국 음식 스타일링
일본식(日本食) 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섭섭하시겠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한국음식에 비해 일식은, 만드는 방법에 있어서 훨씬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식 메뉴인양 일식이 대접받게 된 이유는 그 차림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실제로 외국인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꼼꼼하게 수놓듯 접시에 올려진 회나 초밥, 또 앙증맞은 도자기에 보글보글 담겨 나오는 냄비 요리에 감동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그 뿐인가, 일본인들이 열차간에서 먹는 간이 도시락조차 그 시각적 맛이 훌륭하다. 꽃 분홍으로 물들인 무절임이며, 반찬사이의 경계로 쓰이는 플라스틱 잎사귀까지 조악하지 않고 예쁘게 꾸며져 나온다.
사실 요리로 치면 한국음식 만큼 거한 조리법도 드물다. 큰불에 훅 볶아내는 중국요리나, 신선한 생물을 예쁘게 오려내는 일본요리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간다는 얘기다. 우리 음식은 좀처럼 한 단계의 조리로만은 끝나지 않는다. 주재료는 밑간이 된 양념장에 재워두고, 얼마의 시간 후에 다시 양념장을 털어 내어 굽거나 찌고, 고명으로 올릴 재료들을 각각 손질하여 데치거나 볶아서 밑간을 하고, 다시 재워 두었던 양념을 한번 끓여내어 굽거나 쪄진 주재료에 맛을 더하게 되니. 이렇게 정성으로만 짓는 밥이 바로 한국 음식인데, 투박하게 담겨 나오는 그 모양새만을 봐서는 세계 최고의 맛으로 선뜻 권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음식에 있어 입에 붙는 맛이 최고지만, 입에 앞서 맛을 보는 곳이 바로 눈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그 맛과 영양에 멋진 담음새까지 더해진다면 세계시장에서 우리 음식이 인정 받을 일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비결이 바로 푸드 스타일링이다.
◆ 갈비찜, 삼겹살, 김치찌개
푸드 스타일링에 관하여 종종 강의를 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언급하는 것이 바로 한식 꾸미기의 어려움이다. 우리 음식이 예쁘게 담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국물음식’이 대부분이기 때문. 찜 요리는 물론, 조림에도 자작하게 국물이 있고 여하튼 잡채나 전 같은 마른 음식은 전채요리 대접에 그칠 뿐, 정작 메인 급으로 꼽히려면 그저 밥에 척척 비빌 수 있는 국물이 식기 바닥에 고여야 한다. 그래서 물기가 많은 요리를 담기 위해 한식에서는 깊이가 있는 그릇이 애용된다. 깊숙한 그릇 속으로 음식이 폭 담기고 나면 그릇 밖으로는 음식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게 되는데. 보이지도 않는 음식을 두고 어찌 감탄을 한단 말이지?
그리하여 나는 국물의 소스화를 생각해 냈다. 예를 들어 갈비찜의 경우, 넓적한 접시에 갈비를 넉넉히 담고 한번 졸여낸 갈비찜 국물을 소스처럼 둘러내는 것이다. 그게 어찌하여 갈비찜이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외국에 우리음식을 ‘팔아’보려고 꾀를 내는 과정에서 생각해 낸 ‘변형 갈비찜’인데, 담음 새를 서구화하기 위하여 국물을 조렸다고 답할 수밖에.
구이 음식의 예를 돕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회식 메뉴인 삼겹살을 보도록 하자. 삼겹살이야 워낙 바로 구워서 바로 먹는 메뉴이긴 하지만, 집에서 먹을 경우에는 주방에서 구운 다음 접시에 옮겨 상에 오른다. 이럴 경우 대개는 아무 접시에나 수북이 고기를 쌓아 상위에 올리기 일쑤인데, 고기도 빨리 식을 뿐더러 시각적으로는 성의 없는 음식처럼 보이기 쉽다. 고기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오래 유지해 줄 수 있도록 맞춰 자른 은박지를 한 겹 깔고, 함께 찍어 먹는 소스를 미리 준비하여 두었다가 곁들여 내면 일인분 씩 담아도 예쁘다.
지인 중에 프랑스에 20년 이상을 사신 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의 메뉴는 프랑스풍의 실용적인 가정 요리법과 한국식 입맛의 퓨전이었다. 유학시절 엄마 밥이 그리울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를 초대해 밥을 먹이곤 하셨다. 선생님의 메뉴가운데 압권은 멋진 샐러드나 프랑스식 고기 요리 뒤에 나오는 ‘김치찌개’였다. 고급스러운 스프 그릇에 일인분 씩 담겨 나오는 모양새가 너무 세련됐고, 느끼한 서양 만찬의 마지막 코스 요리로 입맛을 정리해 주는 데 손색이 없었던 것. 서양식에 섞여 나와도 얼마든지 훌륭한 스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치찌개의 재발견’이 된 셈이다. 단지 담는 그릇 하나 바꿨을 뿐일 텐데 말이다.
필자가 업으로 하는 일중 한 가지이기도 하거니와 화제의 검색어로도 종종 등장하는 직업이기에 ‘푸드 스타일링’에 관하여 이런 저런 소리 해보았다. 남의 땅을 제 것이라고 허튼 수작 부리는 이웃 나라를 보면서 하루 빨리 우리음식이 저들의 밥보다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돕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겠다는, 난데없는 애국심이 불끈 솟아 해본 말이다.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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