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고향 선산에 사초를 했다. 한 동네에 사는 숙항 여섯 명과 우리 형제 다섯이 겨우내 무너진 산소를 다듬고 다시 잔디를 입혔다. 그날 새벽에 양양에서 산불이 났다. 사초를 하는 내내 바람이 아주 몹시 불었다. 숙항들도 연신 양양의 산불 걱정을 했다. 점심 때 산소로 음식을 날라온 안들이(아내들이) 이제 불길이 잡힌 것 같다고 말하자 그날 일을 나온 사람 가운데 영좌 숙항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잡혔다 해도 그건 아직 몰라. 이 바람이 여간 바람인가. 봄마다 이렇게 불어대는 양강지풍(襄江之風 양양 강릉지방의 돌개바람)인데. 큰불을 잡았다 해도 온 산에 있는 등걸에 붙은 불씨를 하루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한글 한자로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우리 집안의 나이 많은 아저씨도 불이 난 곳 백리 밖에서 오랜 경험과 상식으로 짐작하는 일을 그 일만 전문으로 하는 산림청의 관리들과 현장에 나온 소방 책임자가 몰랐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들이 더 많은 나무를 태우고, 문화재를 불태운 자들이다. 고향 땅의 형제 같은 나무들과 문화재를 잃은 사람으로 나는 그렇게 밖에 달리 이 일을 해석할 수 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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