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의학'연구 어디까지 왔나
21세기 의학의 가장 큰 화두는 유전자 및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다. 기존 치료 방법이 인체의 망가진 장기를 새 것으로 바꾸거나 약을 통해 나쁜 세포를 죽이는데 그쳤다면, 미래의 치료는 유전자나 세포 자체를 바꿔 몸을 회복시키는 게 목표다.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가 지난해 1월 세계 최초로 배양했던 인간배아복제줄기세포 역시 보다 나은 세포 치료를 위한 과정 중 하나다. 황 교수는 여성의 난자에 같은 여성의 체세포 핵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배아복제줄기세포를 배양했다. 이 연구성과의 가장 큰 의의는 지금까지 냉동 배아 등을 복제해 만들어낸 줄기세포를 이식할 경우 환자의 몸에서 일어났던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데 있다. 줄기세포는 몸의 장기·조직·세포 등으로 분화하는 원시세포로 수정란 등에서 얻는 ‘배아줄기세포’와 골수 및 제대혈에서 얻는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황 교수의 연구가 배아줄기세포와 관련된 것이라면, 최근 생명공학기업 및 연구소 등에서 활발히 개발 중인 제대혈은 성체줄기세포의 대표적인 예다.
배아복제줄기세포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어 질병 치료에 쓰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 배아의 인격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지 않아 연구가 조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이와 달리 제대혈 등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어 난치병 환자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희망을 제공한다.
제대혈 추출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첫 치료 성공 사례는 1988년 프랑스에서 빈혈을 앓고 있던 5세 남자 아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7세 남자 아이가, 98년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앓는 5세 남자 아이가 각각 동생의 제대혈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는데 성공했다.
제대혈 치료를 위해서는 은행에 돈을 예금하듯 아기의 탯줄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채취, 섭씨 영하 150~195도에서 얼려 보관했다가 필요한 경우 녹여서 쓸 수 있는 ‘제대혈 은행’을 이용해야 한다. 비용은 보관 기간이나 계약 조건 등에 따라 다르나 보통 1년에 15만원 정도다. 추출할 수 있는 제대혈 양이 통상 40㎖ 정도로 성인에게 이식하기는 부족하기 때문에 15년 이상 보관할 이유가 없다.
제대혈 조혈모세포는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반씩 물려받은 아이의 탯줄에서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자녀는 물론 형제 자매의 치료에도 활용 가능하다. 실제로 백혈병 등에 걸린 자녀에게 맞는 골수를 찾을 수 없을 때 아이를 낳아 신생아의 탯줄에서 아픈 아이를 위한 제대혈을 추출, 치료에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부모 아래서 태어난 형제 자매라 해도 혈액형 및 세포형이 같아야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혈액 관련 난치병 세포치료 결과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하는 것에 비해 합병증과 부작용이 없는 대신 재발 확률이 약간 높다는 것도 연구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 국내 BT기업들은…
메디포스트(대표 양윤선 진창현·www.medi-post.co.kr)는 신생아의 탯줄 혈액인 제대혈을 보관하는 ‘제대혈 은행’과, 제대혈 내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 벤처다. 2000년 서울대병원 등 국내 대형 병원 전문의 중심으로 설립된 후 제대혈 보관 및 이식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제대혈은 백혈병을 비롯해 혈액과 관련한 각종 난치병 치료 및 항암 치료 보조제로 주로 쓰인다. 메디포스트는 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 뼈 손상 치료제 ‘본스템’, 신경계통 질환 치료제 ‘뉴로스템’, 심장질환 치료제 ‘하트스템’ 등으로 세포치료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카티스템은 2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국내 줄기세포 관련 치료제 중 처음으로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다. 현재 메디포스트가 보관 중인 제대혈은 6만 유닛(제대혈 단위), 이식 건수는 116건으로 국내 시장의 약 40%를 차지한다.
‘아이코드(www.icord.com)는 1984년 민간병원 최초로 시험관 아기와 나팔관 아기를 탄생시킨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가 운영하는 제대혈 은행이다. 오랜 기간 구축해온 시설을 활용, 새로운 시설투자 및 인력채용 등에 따른 간접비를 줄여 보관 비용을 최저 99만원까지 낮춘 것이 특징이다.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종합병원이기 때문에 혈액 채취부터 치료를 위한 이식까지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라이프코드(대표 최수환·www.cordblood.co.kr)’는 세계 최대 가족 제대혈 은행인 미국 CBR과 기술제휴를 맺고 미국혈액은행(AABB)으로부터 제대혈 품질관리 인증서를 받은 생명 공학 기업이다. 향후 다양한 필요성에 대비해 제대혈을 여러 개의 용기에 나눠 보관하며 국내에선 유일하게 연(年) 보관료 납입제도를 도입했다. 2001년 ‘인간 조혈모세포로부터 림프구성 수상돌기세포를 생산하는 기술’ 등 두 건의 특허를 등록한데 이어 2004년‘제대혈로부터 줄기세포를 분리·배양하는 방법’ 등 5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라이프라인(www.lifeline.co.kr)’은 비영리 법인 녹십자의료재단과 목암생명공학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제대혈 보관·치료 서비스다. 다섯 겹의 경비 시스템을 갖춰 시설관리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는 녹십자 재단 소유 건물에 제대혈을 안전하게 보관한 것이 큰 장점이다. 그 동안 해외 유수 전문기관과 협력관계를 맺어 세포 유전, 환경 관련 검사, 유전 분야 임상검사 등에 관한 광범위한 기술을 제대혈 관련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라이프라인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성인의 혈액에서 추출한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이나 바이러스 등으로 손상된 조직을 없애는 세포치료 전문기업 이노셀(www.innocell.com·대표 정현진)은 면역세포치료제인 활성화림프구치료제 ‘이뮨셀-LC(Immuncell-LC)’를 개발, 6월 중 전임상 시험자료를 식약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 생명공학기업 림포텍과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이 치료제는 혈액에서 분리한 림프구를 이용, 암세포 파괴능력이 4,000배 이상 탁월한 ‘싸이토카인 유도 살해세포(CIK)’를 제조함으로써 암 치료 효과를 극대화했다. CIK란 몸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면역 체계를 촉진해 암 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알려진 생리활성화 물질이다.
김신영기자
■ 재대혈이란
제대혈(臍帶血)은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는 탯줄에 있는 혈액이다. 보통 70~100㎖ 정도 존재한다. ‘탯줄 혈액’이라고도 불린다. 몸의 장기·조직·세포로 분화하는 줄기세포가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1㎖ 당 10만개 정도 존재해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대혈에 포함된 줄기세포는 특히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림프구를 많이 생산하는 게 특징이다. 이를 골수이식이 필요한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등 난치병 환자에 주입하면 면역체계를 복원해 암세포를 효율적으로 퇴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제대혈 뿐 아니라 성인의 건강한 혈액에 존재하는 면역 세포를 추출, 냉동 보관한 후 유사시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면역세포은행’도 생겼다.
만약 병에 걸리면 냉동 보관했던 혈액을 녹여 면역 세포의 기능을 증폭시킨 후 자신의 몸에 다시 주입해 항암 치료를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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