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성적은 조연배우들에게 물어보세요'
요즘 조연배우들이 펄펄 날고 있다. 대형스타가 없는 ‘군웅할거' 시대에 이들의 극 중 비중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흥행을 좌우하는 주요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0일 개봉해 지난 주말 전국관객 220만 명(배급사 집계 수치)을 돌파한 ‘마파도'(감독 추창민)는 조연배우 덕을 제대로 본 대표적인 사례. 고개를 까딱이며 불량기 가득한 사투리를 툭툭 내뱉는 주연 이문식의 익살스러운 연기도 관객을 사로잡았지만, 김을동 여운계 김형자 김수미 길해연 5명의 오랜 세월 쌓아올린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감칠 맛 나는 연기가 관객몰이의 ‘일등공신'이라는 것이 충무로의 분석이다.
1일 나란히 극장에 걸려 지난 주말 각각 45만6,246명과 39만2,000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난형난제'의 성적을 올린 ‘주먹이 운다'(감독 류승완)와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도 조연대결이 불꽃을 튀기는 상황.
‘주먹이 운다'에서 보는 이의 가슴을 ‘주먹으로 울리는' 최민식과 류승범의 호연은 나문희 변희봉 등 중년 배우의 묵직함과 천호진 임원희 오달수의 개성 넘치는 연기를 밑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도드라진다. ‘달콤한 인생'에서 비열한 뒷골목 인생의 전형을 보여준 황정민 김뢰하는 자칫 건조하고 밋밋해보일 수 있는 이병헌의 역할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사실 조연배우들이 뭇시선을 모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문식 유해진 성지루 오달수 등이 나오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몇몇 조연배우는 이 영화 저 영화에 얼굴을 내밀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스크린을 기웃거리며 짧은 웃음만을 선사했던 예전 조연배우의 위상은 최근 사뭇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영화 기획단계에서 중심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웰 메이드'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식되어 스타 주연배우 위주의 제작 관행을 조금씩 바꿔 놓고 있다. 실제 ‘마파도'의 경우 다섯 할머니를 중심 캐릭터로 놓고 중년 배우들 섭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달콤한 인생'에서 특별출연이란 이름으로 조연 역할을 해낸 황정민은 김지운 감독이 ‘여자, 정혜' 촬영장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오달수) "조연은 축구의 어시스트와 같다"(오광록)는 조연 배우들의 어록이 가히 실감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애초에 워낙 적은 출연료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연 배우가 ‘귀하신 몸'이 되면서 출연료도 수직상승하고 있다. 영화사가 제작비에 압박을 느낄 정도로 이들의 출연료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연배우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였던 중년 배우들의 설 자리도 넓어졌다. 이들은 억대를 쉬 넘어서는 주연배우의 출연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촬영횟수에 비해 꽤 쏠쏠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사 봄의 박소영 팀장은 "실력 있는 조연배우들이 출연하면 이야기 구조가 풍성해보이고 실제로 영화도 탄탄하게 만들어진다"며 "영화 완성도를 위해 예전보다 조연배우 선정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출연료도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치솟는 출연료가 조연배우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달콤한 인생'의 한재덕 프로듀서는 "조연배우들 몸값이 높아져 예산을 짜기가 힘들어도 그들은 그 만큼 값을 한다"며 "매력적인 성격파 배우들이 많아 ‘조연 전성시대'가 3,4년은 지속될 것이지만, 출연료가 지나치게 오르면 제작비에 부담을 느껴 새로운 얼굴을 연극계 등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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