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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일본, 영화가 가르쳐야 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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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일본, 영화가 가르쳐야 할 차례

입력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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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한살림 초청으로 한국에 온 일본의 대안운동가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지방에서 생활협동조합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비교적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이들이었다. 일본의 시민운동은 지도자 중심이 아니라 구성원 하나 하나가 실천에 매우 투철하기 때문에 한국이 배울 점이 많았고 이들도 첫날 상견례에서 매우 밝은 표정으로 활동상을 자랑했다. 4박5일 일정으로 온 이들의 마지막 날 시간표는 목천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곧바로 출국하는 것이었다. 나는 첫날의 상견례 자리와 마지막날의 공항 출국장에서 이들을 두 번 만났다. 평범한 일본인들이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소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이들은 죄지은 사람처럼 내 눈을 피했다. 첫날의 밝은 표정은 간데 없었고 모두들 눈가가 부풀어 있었다. 통역을 맡은 재일동포 목사는 이들이 독립기념관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으로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을 보면서 평범한 일본 사람들이 일제의 만행에 대해 교육받을 기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만일 사실을 알기만 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때문이다.

그런데 이즈음에 이르고 보면 일본의 교육을 더 이상 일본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본 교육에 발벗고 나서야 할 때가 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본의 전쟁범죄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에 집중해왔다. 사과와 배상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손해를 배상하면 끝난다. 물론 일본은 분명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35년간 선한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고 귀한 자원을 빼돌린 가해자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일본은 한국과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힌 데서 그치지 않고 온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냈다. 여염집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성노예로 삼았고 무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저질러 인간성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총알의 관통거리를 알기 위해 사람들을 세워놓고 총알을 쏘았다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마취시켜놓고 장기적출실험을 하여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하고 산 사람이 동사하기까지 시간을 재는가 하면 세균의 강도를 측정하는 데 인간을 썼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행위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자칫하면 인간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걸 경계하기 위해 유대인 학살만큼이나 끊임없이 되새겨지고 널리 알려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나치의 범죄를 고발하는 영화가 전세계를 휩쓰는 데 반해 일본이 저지른 범죄는 너무도 조용히 묻혀있다. 이제 우리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양식을 통해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전세계에 고발해야 한다. 이것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인류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이며 가까이는 일본이 또다시 과거의 군국주의로 빠져드는 우를 막기 위해서이다.

봉숭아 꽃물이나 들이고 싶던 그 소녀는 군대위안부로 끌려 간 후 어떻게 되었는지, 일본 관동군의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간성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우리도 ‘쉰들러리스트’와 ‘피아니스트’와 ‘소피의 선택’ 못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엘리 위젤처럼 평생 일본 군국주의의 범죄상을 폭로하는 소설가도 나와야 한다.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인을 기록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처럼 일본인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비참하게 살해당한 일본인들도 문학으로 영화로 널리 알려야 한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 하는 짓은 인류에 대한 전쟁 선포이다. 인류를 격상된 존재로 이끌기 위해 이 전쟁에 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일본인들까지 교육시킬 수 있는 문화전이 가장 효과적이다. 인류에 이런 참혹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본의 잘못된 정치지도자들이 깨닫게 될 때까지,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진실을 알 때까지 작가와 영화인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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