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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아이'는 어디두고 어설픈 해프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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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아이'는 어디두고 어설픈 해프닝만…

입력
200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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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 3사 월화드라마는 각기 다른 ‘부부’ 이야기를 다룬다. 주 타깃층이 달라서인지, 어느 작품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시청률로 경쟁하고 있다. 이번 주부터 3주간 월화드라마 세 편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첫 대상은 MBC ‘원더풀 라이프’다.

‘원더풀 라이프’의 승완(김재원)은 정말 원더풀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하룻밤 실수로 아이 아빠가 됐지만, 그 덕에 부모가 집도 사주고 양육비도 대주며, 세진(유진)과는 ‘사랑 없는 결혼’을 이유로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아 틈만 나면 딴 여자에게 눈길을 줄 수도 있다. 부모가 사 준 집에서 부모의 간섭 없이 멋대로 살고, 힘에 부치면 부모에게 손을 벌리면 된다. 그에게 아이란 그런 ‘소꿉장난’을 더 활기차게 해주는 요소일뿐이다.

혼전임신과 그에 따른 육아문제를 소재로 삼았지만, 실상 ‘원더풀라이프’는 KBS의 ‘쾌걸춘향’이나 ‘풀하우스’처럼 두 남녀를 갖은 핑계로 함께 살게 만드는 드라마일뿐, 그것이 갖는 현실적인 무게를 짊어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세진의 언니가 세진의 동의 없이 아이를 승완의 집에 데려다 주거나, 승완이 아이를 학교 매점아줌마에게 맡기는 정신 나간 짓을 해도 그건 단지 코믹한 해프닝일 뿐이다.

물론 두 남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게 목적인 트렌디 드라마에서까지 엄격한 현실 반영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왜 아이라는 설정을 끌어들였는지 잊고 있는 듯하다. 어린 부부가 아이를 가졌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일이 되고, 그만큼 서로 갈등을 빚을 일도 무궁무진하며, 거기서 두 남녀의 사랑과 정신적인 성숙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그런 일상의 충돌을 에피소드로 꾸미는 대신, 자꾸 다른 설정들을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는 데만 골몰한다. 갑자기 혼수를 두고 양 집안간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조연인 도현(이지훈)과 채영(한은정)이 모두 첩의 자식이라는 출생의 비밀에, 도현의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의 경영권 문제까지 얽혀 매회 로맨틱 코미디부터 심각한 사각관계 드라마까지 정신없이 옮겨 다닌다.

그러다 보니 에피소드들은 그 순간순간만 웃기거나 슬프게 하려 할뿐이다. 그래서 갑자기 세진이 승완을 유혹한다며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연애는 쇼핑이다"라며 승완을 가볍게 사귈 뿐이었던 채영이 ‘알고 보니 사랑했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결혼한 승완을 차지하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심지어 사건이 떨어질만하면 아이의 출산, 승완의 군입대를 핑계로 몇 년씩 시간을 건너뛰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캐릭터의 감정선은 뚝뚝 끊기고, 여자 가수출신 연기자중 가장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는 유진이나 과장된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김재원의 연기와 별개로, 승완과 세진의 캐릭터는 철없는 남자와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여자라는 전형적인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원더풀 라이프’는 설정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깊이는 물론,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유쾌한 재미도 모두 잃어버린 채 심각할 수도 있는 모든 사건들을 일회용으로만 소비한다. 물론 아이보다 더 철없는 부부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아이는 ‘현실’이다. 승완과 세진은 몰랐다고 해도, 최소한 ‘원더풀 라이프’의 제작진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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