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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서거/ "성인반열 오를 가능성 누구보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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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서거/ "성인반열 오를 가능성 누구보다 커"

입력
2005.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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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 최고의 단계인 ‘성인(Sainthood)’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과거 1,000년간 교황 중에서 성인에 오른 교황은 단 3명. 교황은 재임시 덕행이 뛰어난 적잖은 신자를 ‘복자(be atification)’나 ‘성인(sainthood)’에 추대하지만, 정작 교황 자신이 성인에 오르기는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요한 바오로 2세도 26년 간 재임 중 1,338명의 복자와 482명의 성인을 탄생시켜 역대 교황이 추대한 수를 다 합한 것보다 많은 시복·시성을 한 기록을 갖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이 될 수 있을 지는 여러 복잡한 절차와 오랜 시간을 거쳐야 결론이 나지만, 현재로선 성인이 될 가능성이 어느 교황보다도 높다는 게 교황청의 생각이다.

시성·시복에 관해 평가하는 부서인 교황청 시성성(諡聖省)의 에드먼드 스조카 추기경은 "내 생각으로는 그는 정말 매우 성스러운 성인"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시성성의 핵심 멤버이자 교황청 내 영향력이 가장 큰 추기경 중 한 사람이란 점에서 이 발언은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가톨릭 교계의 평가를 짐작케 한다. 그가 성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보는 이유로는 세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자신을 암살하려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나아가 그 가족까지 사랑으로 감싼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앙적 고난을 겪었는가도 중요한 사항이다. 폴란드 출신인 교황은 나치의 강제징집을 피해 지하실에 피신하고, 사제가 되기 위해 숨어서 신학교에 다니는 등 신앙을 위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 교황청의 한 관계자는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고난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머지 하나는 파킨슨병 등 교황이 겪은 개인적 고통이다. 교황의 의연함과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세는 이런 고통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흠도 지적된다. 교계 내 여성의 지위를 제한하고, 피임·낙태 반대, 사제의 결혼 금지 등 보수적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으로 교권을 행사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복자가 되려면 한가지 기적이 그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확인돼야 하고, 여기에 또 하나의 기적이 더해져야 비로소 성인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다. 사후 5년 뒤부터 시작되는 시복·시성 평가작업은 이 때문에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다. 조국을 잃는 광란의 이념시대를 겪은 뒤 공산주의 붕괴, 종교·민족간 화해를 이끈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점에서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추대될 수 있는 여러 기적을 일구었다고 교황청은 보고 있다. 스조카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교계 정책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그가 보여준 이타(利他)의 정신, 신념을 위한 순교자적 희생, 고난으로 점철된 개인적 삶은 어느 교황에서나 쉽게 찾아질 수 있는 덕목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교황은 기도하는 詩人이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 울지 말고 우리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마지막 말씀’은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기에 앞서, 자연과 세계와 신을 마주한 한 진솔한 예인(藝人)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인이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직전인 1946년 5월 그의 첫 시집인 ‘숨은 하느님의 노래(Song of the Hidden God)’의 표제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 단순함 속에 있다면/ 가장 단순한 갈망은 동경 속에 깃 드는 법/그러므로 신께 향한 동경에 의심을 품지 말기를/ 가장 단순한 이들이 그분을 차지하리니/ 순백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에는 아무런 말도 필요 없으니"

임종 직전 극한의 순간에 남긴 그 편안한 전언이, 오래 전 지은 이 시의 검박함과 메시지의 단순함을 닮았다는 것이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최성우 신부는 "교황의 마지막 말씀은 충실히 생을 보내고 후회 없이 떠나는 영혼의 가뿐함이 느껴진다"며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받은 느낌이 이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공산국가 출신 첫 교황으로, 재임 중 조국 폴란드의 민주화에도 큰 관심을 쏟았던 고인은 한 시에서 "조국을 생각하면서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내 뿌리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된다/ 내게는 너무도 멀기만 한 감추어진 변방/ 그 곳을 향한 고즈넉한 마음이 내 영혼을 일깨운다/ 우리들 자신보다 더 오래된 그 옛날…/보물처럼 소중한 그 곳을 내 안에 고이 간직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2003년의 시 ‘로마에서 온 세폭의 성화’에서는 지상에서의 생을 정돈하고 신의 품을 예비하는 마음도 엿보인다. "그렇게 세대가 바뀐다/ 맨몸으로 세상에 와서 맨몸으로 흙에 돌아가리니 자신이 잉태되었던 원형으로 환원되리라/ 먼지에서 태어나서 먼지로 돌아갈지니라…/형체는 시초의 무형으로 바뀔 것이요/ 생명체는 무기력한 무생물로 아름다움은 황폐한 흔적으로 바뀌게 되리라…"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시 외에도 네 권의 단행본 등 적지않은 수필집을 펴낸 ‘인기작가’였다. 바티칸 수장에 오르기 전인 1960년, ‘안드레이 자비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희곡 ‘보석가게’는 영국 런던에서 연극과 TV영화로 제작됐고, 여러 나라에서 라디오극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두 차례의 한국방문 때에도 어눌하지만 큰 울림의 한국어 인사로 깊은 인상을 남긴 교황은, 역대 어느 교황보다 바쁘게 여러 나라를 순방했지만, 매번 그 나라의 언어로 그 국민을 만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 소통과 존중의 자세는 큰 신앙인으로서의 풍모이면서, 아름다움을 좇는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성(聖)의 정신을 속(俗)에 스미게 하는 통로가 진선미요 문학 예술이었던 것이다. "미(美)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으로 천국의 장관을 몰래 곁눈질하는구나 나의 슬라브혼이여- 아득한 옛날부터 꿈을 꾸는 몽상가여"(‘슬라브 민족의 서, 1939)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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