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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개화기 신문에서 배우자

입력
2005.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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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신문을 읽다 보면 당시 신문들이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를 설정해 대중에게 전달하려 한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신문 등 개화기에 신(新)지식층이 발행한 신문이 특히 강조한 사회적 가치는 세 가지다. 평등주의, 실리주의, 근로주의가 그것이다.

개화기 신문들이 내세운 평등주의는 민주사회로 가기 위해 수용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가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 양반과 상놈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협회는 주최하는 토론회에 백정을 참석시키기도 했다. 직업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서열화해 차별하는 폐습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녀 차별도 철폐 대상이었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천하에 제일 불쌍한 것이 인습의 노예가 되어 있는 ‘조선의 여편네들’이었다. 여성의 평등을 보장하고 봉건적 가족제도를 과감하게 혁파하지 않는 한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단정했다.

개화기 신문은 또 실리주의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를 위해 실리의 반대편에 있는 세 가지 낡은 가치를 지목했다. 그 첫째가 명분이다.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실사를 구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성신문에 따르면 국력이 곤핍한 것은 사대부가 실질을 멀리한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실사를 떠난 학리는 공담이며 공담에만 매달리면 문약(文弱)에 빠지게 되고 문약에 치우치면 경쟁의 시대를 당하여 자존할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형식이다. 허례허식에 발목을 잡혀 있는 한 개화란 나무 밑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셋째가 미신이다. 과학을 멀리하고 미신에 의지하며 풍수에 기대어 조상의 음덕이나 바라는 사람들에 대해 개화기 신문은 강한 모멸감을 표시했다.

개화기 신문이 강조한 또 하나의 사회적 가치는 근로주의다. 양반은 놀고먹고 일은 상놈이나 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을 고치지 않으면 개화는 한낱 봄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 때 대중화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는 한국인의 의식에 예수나 마르크스 못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평등주의, 실리주의, 근로주의는 지금 생각하면 뻔한 가치들이지만 당시로서는 사회체계나 가치체계 자체를 온통 뒤바꿔 놓은 것들이었다. 대중에게 그런 가치를 성공적으로 주입한 결과는 그 뒤 한국 자본주의의 기적 같은 압축성장으로 나타났다.

신문이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언론인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개화기 지식인들에게 그런 물음은 우문에 불과했다. 일반인이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 자명한 도리라면 언론인이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고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존재 이유였다.

몇 년 전 새로운 세기와 새로운 천 년이 겹으로 다가왔을 때 우리 신문 방송은 눈앞에 대전환이 펼쳐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 적이 있다. 원시 봉건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에 이어 그야말로 역사적인 새로운 시대가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사회에 대비해 새로 함양해야 할 새로운 사회적 가치는 무엇일까. 그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고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우리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회학자 게이 터크만은 현대 언론인이 마감시간에 쫓겨 명상할 여유를 잃었을 뿐 아니라 그럴 의향조차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일상에 얽매인 언론은 우리에게 하루살이 정보를 주지만 일상을 뛰어넘는 언론은 한 시대를 이끌 ‘가치’를 안긴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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