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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돌 두 초등학교를 가다/ 한세기 지났어도 母校의 품은 따뜻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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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돌 두 초등학교를 가다/ 한세기 지났어도 母校의 품은 따뜻하기만…

입력
2005.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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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등학교에서는 휴일이면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말소리조차 멈춰버리지만 3일 하루종일 시끌벅적한 학교가 있었다. 개교 100주년을 맞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청산초등학교와 충남 논산시 강경읍 중앙초등학교. 코흘리개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두 학교의 ‘100세 잔치 마당’에 가 보았다.

■ 충북 옥천 청산초등학교 (1905.4.1~ )

"일제시대 가슴에 맺힌 설움과 한이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

3일 오전 충북 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청산초등학교(교장 임찬옥) 강당. 맨 앞쪽에 앉은 주름진 얼굴의 노인들은 감개무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905년 설립된 이 학교가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일제에 의해 창씨개명 된 원로동문 105명에게 본명으로 된 새 졸업장을 수여했다.

대표로 졸업장을 받은 전용익(77·28회)씨는 "1943년 졸업하면서 일본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고 어린 나이지만 나라 없는 설움에 집에 와서 울었다"며 "광복 60주년인 올해 부모가 지어준 이름의 졸업장을 받으니 여한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장용호(76·26회)씨는 "나가노 요코(張野龍虎)란 이름의 졸업장을 볼 때마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았는데 죽기 전에 내 이름 석자로 된 졸업장을 받게 돼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청산초등학교 총동문회(회장 안철호·65)는 지난해부터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창씨개명 학적부 바로잡기 운동’을 추진했다. 60년 이상 먼지 속에 묻혀있던 학적부를 찾아 창씨개명 시기인 1941∼45년 졸업한 동문 600여명 중 553명의 본명을 확인, 별도의 학적부를 만들었다.

동문회는 또 5,000만원의 기금을 모아 교내 도서관(40평)을 학교와 지역의 역사자료를 전시하는 향토사료관으로 리모델링하고 학교 동산에는 100주년 기념 조형물도 세웠다.

청산초등학교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4월 1일 충북도내에서 3번째로 사립 신명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했다. 1912년 청산공립보통학교로 인가 받았고, 1915년 제1회 졸업생을 낸 뒤 지금까지 90회에 걸쳐 9,54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 3·1절에 복권돼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고 조동호 선생이 1회 졸업생이다. 3공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난 고 이봉성(11회)씨, 박준병(31회) 박유재(32회) 전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송재성(45회) 차관도 이 학교 출신이다.

이 학교의 개교 100주년 행사는 청산면의 마을 축제였다. 이 마을은 백발의 할아버지에서부터 코흘리개까지 모두 동문으로 맺어져 있다. 곽중섭 교감은 "학교 역사가 한 세기에 달하다 보니 증조할아버지에서부터 손자까지 4대가 동문인 집안도 흔하다"고 말했다. 박준병 전 의원은 "할아버지가 4회, 아버지가 16회, 내가 31회"라고 소개했다.

주민들은 식전행사로 어린이들이 준비한 사물놀이 등 재롱잔치를 구경했고, 100주년 기념식을 마친 뒤에는 운동장에서 남녀노소 다같이 모여 노래자랑을 하며 오후 늦게까지 여흥을 즐겼다. 학교 곳곳에는 100년의 역사가 묻어나는 빛 바랜 사진들이 전시돼 아들, 손자의 손을 잡고 구경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하지만 농촌지역 학교가 그렇듯 청산초등학교도 학생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해 졸업생 수가 1960년대까지는 200~300명에 달했지만 1990년대 이후 100명 이하로 감소해 올해 90회 졸업생은 27명에 불과했다. 현재 학생수는 207명으로 3~5학년만 2학급씩이며 나머지는 1학급씩이다.

한편 충북도교육청은 개교 100주년을 맞은 청산초등학교에 2억2,000만원을 지원, IT도서관을 건립해주기로 했다.

글·사진 옥천=전성우기자 swchun@hk.co.kr

■ 충남 강경 중앙초등학교 (1905.4.2~ )

"제가 다니는 학교 나이가 벌써 100살이 됐다니 놀라워요. TV에 나오는 유명한 분들이 정말 우리 선배님인가요?"

3일 논산시 강경읍 중앙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 학교 3학년 강신관군은 갑자기 몰려온 어른들을 쳐다보며 눈이 왕방울같이 커졌다. 학교를 찾은 동문과 재학생 2,000여명에다 구경 온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 평소에는 넓어보이던 운동장이 들어설 곳조차 없어 보였다. 보기드문 일이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 동문들은 50~60년 전 소학교 시절로 돌아가 추억에 잠겼다. 10여명씩 어울려 철부지 시절 뛰어다녔던 학교운동장과 교실 등 곳곳을 돌아다니며 후배들의 책상과 걸상을 어루만졌다. 코흘리개 후배들을 모아놓고 그 시절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참석자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42회 졸업생이고, 탤런트 강부자씨는 그보다 2년 후배이다.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김 실장은 인사말을 통해 "1세기 동안 역사의 굽이굽이를 돌아 오면서 수많은 동문이 배출됐다"며 "개구쟁이 시절을 회상하며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는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강씨는 후배들의 사인 공세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강씨는 "졸업한 지 52년만에 학교를 처음 찾았다"며 "어릴 적 공부하던 교실과 건물이 불에 타 모두 없어져 아쉽지만 밝게 자라는 후배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작가인 백남식씨(41회)의 사진전도 열렸다. 호주 국적을 갖고 있는 백씨는 세계 최초로 바티칸에서 개인전을 열고 교황청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했으며, 김정일 취임시 사진을 촬영해준 공로로 북한당국으로부터 ‘로력훈장’까지 받았다.

학교측은 이날 1924년 신사참배 반대사건을 주동하고, 한국사 강의를 금지하는 일본인 교장에게 컵을 던지며 항의하다 동기생 6명과 함께 퇴학을 당한 윤판석(1983년 작고)씨 가족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했다.

2년 전부터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해온 동문들은 최근 기념문집을 펴냈다. 문집에는 모교의 역사와 동문들의 회고문과 주소를 담았다.

또 십시일반 해 모금한 기금으로 후배들을 위한 급식실 건립비를 전달했으며, 개교100주년 기념비도 제막했다.

1905년 충남도에서 두번째로 설립된 이 학교는 당초 사립 ‘보명학교’로 개교했다가 1949년 공립 ‘중앙국민학교’로 개편됐다. 지금까지 모두 96회에 걸쳐 1만7,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전국 3대 시장이었던 강경에 일본인들이 몰려들면서 세워진 이 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3,000명을 넘기도 했으나 강경포구의 쇠락과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300명 남짓한 학교가 됐다.

학교측은 기념행사에 앞서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으로 일본이름으로 졸업한 동문들의 학적부를 우리 이름으로 고치는 작업을 하려했으나 중도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학교 건물이 불에 타버리면서 학적부 등 모든 자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는 강당건물만 남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강희 교장은 "1950년 이전의 모든 자료가 소실돼 문집 발간 조차 어려웠다"며 "동문들의 기억과 앨범을 찾아 일부 자료를 복원, 제대로 된 100년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논산=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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