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6년여의 위대한 역정을 마치고 선종했다. 11억 가톨릭 신자를 포함하여 개신교와 모든 종교인, 정치 지도자들이 비탄에 잠겨 있다. 외롭게 성장하여 조국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된 후 채석장 노동자로도 일했던 그는, 편협하지 않은 열린 시선으로 가톨릭과 세계를 이끌어 왔다. 젊어서는 문학과 연극, 스포츠를 열렬히 사랑했으며 교황 재위 기간에는 온갖 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을 끊임없이 순례하며 생명의 숭고함과 종교적 비전을 전파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00여 차례, 130여 국가를 사목 방문하여 ‘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리었다. 폴란드를 연속 찾아 자유화의 숨결을 불어넣었고, 한국에는 84·89년 두 차례 방문하여 군사정부 아래 지친 국민을 위로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애도처럼 그는 영적인 가톨릭 지도자이자 지칠 줄 모르는 평화의 옹호자였고, 종교 간 대화의 선구자였다. 그는 정신적·실질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겪은 20세기 후반의 국제사회를 이끌어 온, 유강(柔强)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사에서도 큰 흔적을 남겼다. 2000년 3월 참회미사를 통해 중세 종교재판과 십자군전쟁, 유대인 박해 등 교회의 7가지 잘못을 참회했다. 무오류설의 상징인 교황이 이 설을 직접 부인한 중대 미사였다. 반면 가톨릭 내부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자세를 고집했다. 전임자들이 성직자가 평민으로 돌아가 결혼을 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두었는데 그는 성직자 독신주의를 고집했고, 여성의 성직 진출은 논의조차 거절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은 전 세계의 커다란 상실이다. 그가 남긴 시 ‘하느님과의 대화가 시작되다’는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떠나간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 안에 남는다/ 뒤에 오는 사람은 떠나간 사람 안에 남는다/ 사람은 모든 오고감 너머에까지 간다…> 그러나 이제 인류가 당면한 숱한 난관 앞에 누가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고, 꺼져가는 희망의 등불을 다시 밝혀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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