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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화제/ 식물인간 시아보 안락사로 이끈 남편 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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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화제/ 식물인간 시아보 안락사로 이끈 남편 마이클

입력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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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안락사 논쟁으로 달구었던 테리 시아보(41)가 영양공급 튜브가 제거된 지 13일 만인 31일 숨을 거뒀다. 이와 함께 동갑내기 남편 마이클의 15년 고행도 마침표를 찍었다. 마이클은 플로리다 파이넬러스 파크의 우드사이드 호스피스 요양원 병실에서 혼자 테리를 임종했다. 그는 테리의 사망을 변호인단을 통해 발표토록 한 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고 있다. 테리의 부모와 언니가 기자회견을 갖고 마이클과 법원을 비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관련기사 8면

이젠 부검절차만이 남았다. 마이클과 테리의 부모가 유일하게 의견 일치를 본 것은 테리에 대한 부검이다.

‘비정한 남편’,‘살인자’,‘바람둥이’. 지금까지 테리의 부모와 기독교계가 마이클을 지칭해 온 말들이다. 테리가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면서, 마이클은 재산과 애인, 심지어 어린 시절 일화들까지 언론에 들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테리가 떠난 뒤 마이클이 바친 희생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언론도 테리의 비극뿐 아니라, 남은 사람의 비극에 대해서도 비로소 조명을 비추고 있다.‘아내의 죽을 권리를 위해 싸운 헌신적인 남편.’AFP통신처럼 이런 제목으로 그를 미화하는 언론도 나타났다.

테리가 식물인간이 된 것은 1990년 2월. 병상간호에 매달려 온 마이클은 8년 뒤인 98년 법원에 테리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해 달라고 청원했다. 이후 그는 테리의 부모와 7년간 추악한 법정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이 기간을 포함해 15년간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마이클이었다.

테리를 처음 만난 것은 82년 가을 대학에 다닐 때다. 부끄러움이 많은데다 뚱뚱했던 테리는 마이클을 처음 보고 사랑에 빠졌다. ‘첫 키스의 남자가 바로 남편’이라는 게 두 사람의 스토리를 보도한 한 신문의 제목이었다. 90년 테리는 몸 안의 화학적 불균형의 일종인 칼륨 부족으로 갑자기 심장마비가 왔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들었다.

부모는 남편의 학대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그가 아내 테리를 등에 업고 캘리포니아까지 가서 진료를 받게 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간호를 위해 스스로 간호대학에 입학까지 했다. 요양원 간호사들은 "마이클은 부족한 점이 발견될 경우 담당 간호원을 꾸짖고 스스로 직접 나서 간호했다"고 말했다. 마이클은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의 몸에 욕창(褥瘡)이 나지 않도록 이리저리 이동시켰고 매일 샤워는 물론 기초화장에다 향수까지 뿌리도록 했다.

주치의였던 제이 월프손은 배심원들에게 "간호에 찌든 그가 더 이상 ‘온정의 남편’은 아닐지라도 비열한 냉혈인간은 결코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에게도 있는 게 아닌가, 마이클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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