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외무성 담화는 무엇을 노린 것일까. 북한은 담화에서 6자회담의 틀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군축’으로의 의제 전환을 꾀했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담화에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도 1일 "미국과의 대등한 대화"를 요구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차석대사가 외무성 담화 발표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이 북미간 신뢰 회복을 위해 뚜렷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는 것과 자신들이 핵보유국가가 됐음을 미국이 인정하고 대접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대등한 입장에서 미국과 토의할 수만 있다면 6자회담 역시 한반도의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북한은 6자회담에 나갈 뜻은 있지만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회담 재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한편 회담이 재개될 경우 핵보유 카드로 우위를 점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과거와 달리 핵 보유국이 됐기 때문에 자신들의 몸값이 올랐고 미국과 다른 회담 참가국들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며 "미국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가시적인 성의를 보일 것인지 의식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6자회담이 미국의 의도대로 운영되지 않도록 미리 못을 박고 나섰다"며 "체면을 적당히 세워준다면 북한은 자신들의 핵 카드를 들고 6자회담에 나와 각종 제안을 쏟아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가 쉽게 관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담화에 나온 군축문제가 국제사회 여론 환기용인지 실제 군축회의 운영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며 "6자회담 참여국 가운데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 적용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군축회담 제기는 상당히 의미 있는 포석이기는 하나 핵보유와 군축을 연계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에 미국이 쉽게 말려들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실현 불가능한 제안을 내놓고 몸값 올리기에 나선 북한의 태도는 결국 미국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도 1일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북한의 무조건적인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담화의 메시지를 일축했다. 결국 미국의 양보와 북한의 백기 투항이 없는 한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달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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