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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곤충…풀…나무…흔하지만 너무도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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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곤충…풀…나무…흔하지만 너무도 소중한

입력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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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건 정말, 착각이다. 곤충은 3억5,000만 년 전 고생대 이전에 등장했다. 인간의 출현은 50만 년이 채 안 된다. 식물과는 비교할 것도 없다. 숫자로 따져도 인간이 절대 열위다. 척추동물의 종수는 4만 여 종이지만, 식물은 25만 종이 넘는다. 놀라운 건 곤충이다. 알려진 것만 80만 종이다. 리스트는 계속 늘어 3,000만 종에 이를 것으로 보는 과학자도 있다. 자만해서 지금 지구를 지배하는 건 인간이라고 해도 그 통치기간은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찰나일 뿐이다.

봄이라는 무대의 주연 배우도 역시 식물과 곤충이다. 인간은 자연이 무상으로 베푸는 그 멋진 공연의 한 회 관객에 지나지 않는다. 이맘 때면 곤충과 식물을 다룬 책들이 제법 나온다. 신간 중에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정복자 곤충’과 ‘세밀화로 보는 광릉 숲의 풀과 나무’가 눈에 띈다.

■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정복자 곤충

곰곰이 생각해봐도 곤충 관련 책 중에 어른이 교양으로 읽을만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예 전문서거나 아니면 정보 위주로 편집된 백과사전류, 그리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그림이나 사진을 듬뿍 곁들인 어린이책이다. 지난해 나온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같은 책은 매력적이긴 하나 곤충 일반을 포괄한 것이 아니어서 아쉽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곤충학과의 메이 베렌바움 교수는 그리 두껍지 않은 한 권의 책으로 곤충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정복자 곤충’은 곤충의 생태와 곤충이 인간과 어떻게 얽혀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하고 재미있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저자는 현재 지구상에 있는 모든 곤충의 수를 더하면 1,000경(경은 1조의 1만 배)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흰개미는 군체가 100만이 넘고 이동성 메뚜기 떼는 10억 마리에 이른다. 곤충은 지구 어디나, 적어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곳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남극의 만년설, 펄펄 끓는 온천, 심지어 산성도가 식초에 가까운 말의 창자 속에도 곤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곤충에 거부감을 갖는다. 이유가 있다. 곤충 하면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기는 이, 벼룩, 모기, 바퀴 등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은 추위에다 이의 배설물로 옮겨진 발진티푸스 때문에 고작 8만 명만 살아서 귀향했다. 모기는 황열이나 뇌염을 옮길 뿐 아니라 선형동물이나 원생동물의 매개체가 되어 말라리아를 일으켜 해마다 2, 3억 인구를 괴롭히고,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곤충은 전체 곤충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인간의 먹을 거리의 3분의 1이 곤충의 수분(受粉) 작용의 결과물이다. 미생물과 함께 곤충이 똥이나 썩은 고기를 먹어 치우지 않는다면 지구는 금방 동물들의 배설물과 사체로 뒤덮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지구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곤충의 생태는 인간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고 있다. 소나무가 드문드문 난 불모의 모래밭에서 자라는 야생 블루루핀만 먹고 사는 미국 뉴욕주의 카너푸른부전나비는 살던 땅에 공항이나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개체군이 급격히 감소했다. 반대로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개미는 개체 수가 늘고, 공격 본능이 커졌다는 연구가 있다.

곤충의 세계를 박학다식하게 풀어낸 저자는 "이 세상의 어떤 동물보다 적응성이 뛰어난 곤충이 인류가 재구성한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라며 "곤충의 건강과 안녕이 지켜지는 한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좋다"고 지적했다.

■ 세밀화로 보는 광릉숲의 풀과 나무

세밀화는 어린이 그림책으로 친숙하다. ‘야생초 편지’에서 황대권씨가 그린 야생초 수채화도 일종의 식물 세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 세밀화를 본격적으로 그려 전시하고 또 책으로 묶어낸 것은 18세기 서양에서 연구와 교육 또는 컬렉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국내에는 식물을 분류해 그림 표본으로 보존하는 작업이 없었다. 국립수목원이 산림생물표본관에 세밀화연구실을 마련해 광릉숲에 서식하는 우리나라 특산 또는 희귀식물 100종의 모습을 세밀화로 재현한 ‘세밀화로 보는 광릉숲의 풀과 나무’는 그래서 값진 작업이다.

경기 포천시 광릉숲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의 능인 광릉을 둘러싼 2,240여㏊의 숲을 말한다.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천연상태로 보존된 온대 낙엽활엽수림이다. 광릉숲에는 광릉요강꽃, 광릉물푸레 등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것을 포함해 900여 종의 식물이 있고, 크낙새와 장수하늘소 등 20종의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2,881종의 동물이 산다.

세밀화집은 3월부터 11월까지 월별로 중요한 광릉의 식물들을 수채화로 우아하게 그려냈다. 도라지 강아지풀 산수유 등 낯익은 꽃과 풀은 물론 삼지구엽초 노루발 수정난풀 닻꽃 단양쑥부쟁이 등 식물의 이름과 분포지, 높이, 뿌리 줄기 잎 꽃이 피는 시기, 열매 맺는 시기, 쓰임새를 알려주고 그릴 때의 느낌을 간략하게 붙였다. 4월의 대표적인 풀과 나무는 깽깽이풀 흰진달래 앵초 미선나무 흰털제비꽃 피나물 연복초 만리화 서울제비꽃 등이다.

공혜진 권순남 이승현씨 등 3명의 세밀화가들은 금붓꽃을 "사진, 도감, 표본을 보고 그리다가 꽃의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광릉 고산식물원이 있는 숲 길가에서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노란색의 우아한 꽃을 발견"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2003년 4월부터 2년 가까이 그림을 그리면서 이들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공혜진씨의 후기가 잘 전해준다. "내 안에 있던 모든 감각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팔랑이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고, 꽃을 향해 돌진하는 벌이 되고, 땅을 뚫고 다니는 두더지가 되고,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다니는 바람이 된다. 나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 앞에 서 있다." 세밀화집 감상으로 그 기분은 낼 수 있을 듯하다. 수목원과 영풍문고 강남점에서는 책에 실린 세밀화 중 일부를 골라 각각 22일, 10일까지 전시회를 연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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