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31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소비침체가 만성화해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또 지난해 해외교육·여행·의료비로 빠져나간 돈이 2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하며, 이 돈을 국내소비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이날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이 같은 내용의 소비구조변화와 향후 정책대응방안을 보고했다. 정규영 한은 이사는 "경제가 완만하게나마 플러스 성장을 하는데도 소비는 오히려 후퇴하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선진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 현상"이라며 "지금의 소비침체는 경기순환적 요인이라기 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비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이다. 2010년이면 10명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할 만큼 인구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사오정(45세 정년)’이 보편화할 만큼 고용불안은 깊어짐에 따라 너도나도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심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노후걱정으로 50대이상 장년층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은 늘리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0~54세 연령층은 1,000만원을 벌었을 경우 2000년엔 829만원을 썼지만 2004년엔 781만원만 지출(소비성향 82.9→78.1%)했고, 55세 이상 고령층은 1,000만원당 소비금액이 761만원에서 694만원으로 감소(소비성향 76.1→69.4%)했다.
한은은 이 같은 노후대비형 소비축소경향이 점차 젊은 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노후를 대비한 연금·보험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화가 급진전됨에 따라 노후를 위한 저축확대가 20~40대로 앞당겨졌는데, 우리나라도 국민연금 불신과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도 소비축소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자 일자리창출 ▦개인·기업연금 활성화 ▦부담은 적고 혜택은 높은 현 국민연금구조의 수술 등 근본적 고령화 대책을 만들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소비침체가 전 연령층으로 확산돼 우리경제는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늘어나는 해외소비도 국내소비의 파이를 갉아먹는 요인이다. 한은은 지난해 해외유학·연수비로 신고된 금액은 25억달러지만, 동반한 가족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71억달러(작년 환율감안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해외여행경비 지급액이 95억달러(11조원)에 달하고, 해외의료비로 지출한 돈도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약 20조원에 달하는 돈이 해외교육과 관광, 의료비용으로 해외에서 지출된 것이다.
한은은 해외소비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교육·의료관련 획기적 규제완화와 관광·레저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며, 소비도 고급·고가화하고 있는 만큼 고급소비에 대한 부정적 국민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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