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라는 암초에 걸려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월 23일 시마네(島根)현 의회의 독도의 날 조례 제출을 시작으로 3·17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 성명, 3·23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등을 거치면서 고조된 현해탄의 파고가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31일 정부는 일본측으로부터 극우파 사관을 대변하는 후소샤(扶桑社) 출판사의 역사 공민 교과서 검정 결과 일부를 전달 받은 뒤 매우 곤혹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11일 후소샤측 신청본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후 외교적 경로를 통해 전력을 다해 수정 요구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의 성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후소샤 출판사가 올해 처음으로 공민교과서 앞쪽에 독도의 전경사진과 함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쓴 사진설명은 거의 고쳐지지 않아 당국을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우리측이 독도를 주권 문제로 간주하고,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제2의 식민지 침탈이라고 규정했음에도 불구 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구체적인 검정 결과는 4월 5일 검정 합격본 교과서가 공개돼야 확인될 수 있지만, 일본은 2001년 당시처럼 역사교과서 집필자의 사관을 수정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얼버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간 학자들의 사관을 검정하는 문제여서 국가는 2차적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는 구태의연한 논리를 이번에도 원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부는 조만간 올해 검정 결과를 분석한 뒤 2001년 당시의 검정 결과와 비교해 ▦개악 ▦2001년 수준 유지 ▦개선 등 3가지로 평가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개악 또는 현수준 유지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이럴 경우 올해 일본 교과서 검정 결과는 2001년 처럼 한일관계를 잔뜩 경색시킬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측에 과거 침략사를 직시하고 반성의 자세를 행동을 옮기라는 과거사 해결 방식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후소샤 왜곡 교과서를 일본 내 학교들이 채택하지 않도록 일본 시민단체와 양심세력과 공조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다카하시 도쿄대 교수 서울대 강연/ 日 우경화 움직임은 민주주의 위기서 비롯
"일본 역사의식의 문제점은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역사교과서와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일본의 대표적 지성 다카하시 데츠야(高橋哲哉·사진) 도쿄대 교수가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국가주의를 넘어서’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등의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다카하시 교수는 31일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소장 이태진)와 이 대학 기초교육원(원장 임현진) 주최로 열린 ‘해외 석학 초청 강연회’에서 "오늘날 일본 민주주의는 정신의 자유를 위협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국가주의 세력들의 헌법 개악 움직임으로 위기에 처했다"며 "일본 내 역사인식의 위기는 이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최근 일본 내에서 사상·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반주를 거부했던 300여명의 교사가 징계를 받았다"며 "이는 지난 1891년 한 고등중학교에서 ‘교육칙어’를 수업시간에 낭독한 뒤 절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 때문에 주저했다가 파면 당한 우치무라 간조가 살던 메이지 시대로 돌아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평화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교분리 원칙과 관련해 일왕과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이미 4차례나 위헌판결을 받았다"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를 무시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외에도 일본군대 위안부 문제를 다룬 NHK의 프로그램이 아베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 장관 등 유력 정치인들의 압력으로 단축 방영된 사건을 예로 들며, 이들 정치인들이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지지하는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들 모임’의 핵심 인물들임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사건들이 일본 내 ‘정신의 자유’의 위기라고 분석했다.
그는 끝으로 "일본의 평화헌법이 패전의 산물인 반면 한국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적 가치들은 시민들이 시련 속에 싸워서 얻은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며 "우익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에 맞서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인과의 연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해 학생, 교수 등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日 갈등감수 의도 있었다/ 지난해 한일정상회담 4일전 실무회의
2004년 12월 17일 이부스키(指宿)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4일전.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가 도쿄로 날아가 일본측과 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하고 있었다.
이 인사는 먼저 "내년은 한일우정의 해이고,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어느 때보다 양국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할 시기입니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정상회담 합의사항에 불행한 과거를 연상시키는 언행을 자제한다는 내용을 넣자"는 본론을 제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적어도 2005년에는 자제해달라는 완곡한 화법이었다. 일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총리 취임 이후 매년 강행되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미 중국 국가원수급 인사들의 일본행을 끊게했고, 이제는 한일관계의 파란을 예고하는 사안. 1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에 참배한다는 것은 식민지 침략의 또 다른 긍정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이런 대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일본측 고위인사는 "합의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측 인사는 "불행한 과거를 연상시키는 일이 발생할 경우 우리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말을 할지 책임질 수 없다"는 말만을 남기고 서울로 돌아왔다.
4일 후 노무현 대통령은 이부스키에서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 "가급적 돌출 발언과 같은 사고가 없기를 희망하며 역사교과서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측이 결단을 내려주면 해결이 쉬울 것"이라고 재차 신사 참배문제를 언급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예상대로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먼저 제기하지 않겠다는 한국의 선의를 이용, 신사 참배나 과거사 망언 등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이는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 대해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정리했음을 시사한다. 확대 해석하면,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헌법개정 등 팽창주의 정책을 취하겠다는 구상 아래 주변국과의 갈등도 감수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부스키 정상회담의 내용을 알고 있는 마치무라 일본 외무성 장관이 29일 사실을 왜곡해 노 대통령이 야스쿠니 신사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뻔한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 데는 전략적 의도가 개입돼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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