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노을이 탄다고 했다. 숯을 지핀 듯 피 끓는 노을에 짚풀같이 마른 마음도 함께 타버린다고 했다.
지상의 낙원이라 부르는 하와이 제도. 그 중 가장 로맨틱하다는 섬 마우이(Maui)에도 시간이 졌다. 저무는 태양은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육감적인 여인의 상체를 닮은 마우이 섬. 여인의 이마에 해당하는 카나팔리(Kaanapali) 해변에 저녁이 찾아왔다.
물 건너 구름을 가득 안고 선 섬은 라나이(Lanai)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곳. 빌 게이츠가 통째로 빌려 결혼식을 올렸던 섬이다.
라나이 섬이 붙들어맨 구름 속으로 해가 수줍게 숨어버렸다. 얼마나 기대했던 폴리네시아의 일몰인데 이것으로 끝인가. 하지만 안타까움은 찰나. 곧 태양이 저문 빛을 뿜기 시작했다.
망망대해 태평양의 한복판, 순정한 대기에 붉은 석양이 눈부시게 번져갔다. 습자지에 붉은 물감 스미듯, 구름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금세 바다에도 그 빛이 녹아 들었다. 세상은 온통 강렬한 붉음에 점령당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 같은 빛.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인가. 겉의 살은 태우진 못해도 몸 속 깊이 숨어있던 열정을 순식간에 데워낸다.
황홀경에 취한 연인들이 야자수 아래 백사장을 거닌다. 그들의 껴안은 팔은 점점 서로를 강하게 감싸 안는다.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귓볼을 스치고 알맞게 데워진 바닷물이 발목을 간질인다. 문득 고개를 들어, 노을 빛에 적셔진 붉은 눈시울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누가 먼저랄것도 없다. 입술은 서둘러 제 짝을 찾는다.
인주빛 노을을 듬뿍 묻혀 깊이 깊이 눌러 찍는 사랑의 약속.
정열의 하와이, 마우이의 밤은 에로틱하다.
마우이(하와이)=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하와이 여행 | 마우이 섬 - 야자수 푸른 그늘 아래 달콤한 휴식 꿈이런가?
지상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신비로워 로맨티스트들의 도피처로 이름난 마우이(Maui). 하와이 제도 중 빅아일랜드에 이어 두번째로 큰 섬이다. 거대한 화산인 할레아칼라 분화구에서의 일출과 카나팔리, 와일레아 등 해변에서의 석양이 그림 같은 섬. 원시의 자연이 주는 벅찬 감동에 전율하고, 또 파도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에 몸을 뉘일 수 있는 아늑한 곳이 마우이다.
새벽 3시반. 졸린 눈을 비비며 짙은 어둠 속 호텔 문을 나섰다. 2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할레아칼라(Haleakala)산 정상. 동부 마우이 중앙에 위치한 3,030m 높이의 휴화산이다. 정상은 커다란 분화구. 크고 작은 9개의 불구멍이 제주의 오름처럼 그 안에 솟아있다.
‘태양의 집’이라는 뜻의 할레아칼라 산은 이름에 걸맞은 일출의 명소다. 뉴욕 맨해튼을 품을 수 있는 거대한 분화구 위로 짙은 구름을 뚫고 오른 태양의 빛이 그 어느 곳의 일출에도 뒤지지 않는 장관이라 한다.
큰 기대를 품고 찬공기에 벌벌 떨며(하와이도 산꼭대기는 춥다) 기다렸다. 하지만 이날은 날씨가 허락치 않았다. 사위가 밝아왔지만 치오르던 태양이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을 슬쩍 내보일 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이 사라진 분화구는 진정 별천지다. 분화구는 뭉실 구름층을 허리에 깔고 거대한 입을 열고 있다. 작은 화구는 뻘건 화산 흙으로 봉긋 솟았고 용암이 흘러간 자리는 넓은 계곡인양 물결친다. 지상의 땅이라기 보다는 화성 등 우주 다른 행성의 표면을 닮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촬영지가 바로 이곳이다.
정상의 주차장은 자전거 행렬로 한무리다. 차를 타고 올라와 분화구 일출을 보고는 자전거로 하산하는 관광상품. 구름 위를 달리던 은륜은 산의 허리를 감싼 구름층을 통과해 40여km 되는 길을 내려간다. 산 전체에 이끼가 낀듯, 연두빛 덤불로 싱그러운 할레아칼라산을 만끽하는 것은 덤이다. 말을 빌려 타고 분화구 안의 하이킹 코스를 달리는 프로그램도 있다.
마우이는 원래 두개로 떨어져 있다가 동쪽의 할레아칼라산과 서쪽의 서마우이산이 화산폭발하면서 그 용암이 이어 하나의 섬이 된 곳이다. 2,275m의 서마우이산 한가운데에 이아오(Iao) 계곡이 숨어있다. 마크 트웨인이 ‘태평양의 요세미티’라 부른 청청(靑靑)한 계곡이다.
우뚝 솟은 산이 1년 내내 구름을 가두고 비를 쏟아 부어 계곡은 언제나 시원한 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18세기 카메하메하(Kamehameha) 왕이 하와이제도를 통일할 때 마우이 군사와 격전을 벌인 곳이 이곳이다. 당시 전사자가 하도 많아 지금도 그 원혼이 떠돌아 계곡의 기가 세다고 한다. 잔뜩 물기 머금은 숲은 싱그럽다. 킹콩이 살아있을 듯한 울창한 밀림은 그 색이 다르다. 가운데 삐죽 솟은 봉우리는 바늘을 닮았다고 해서 이아오 니들(Iao Needle)이라고 부른다. 이아오 계곡 아래에는 한국 이민 100주년(2003년)을 기념해 조성한 한국공원이 있다.
눈부시게 흰 백사장과 야자수 그늘.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코발트빛 바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마우이의 해변은 지친 일상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는 꿈의 낙원이다.
마우이 서안의 카나팔리 해변은 하얏트 호텔을 비롯해 웨스틴 쉐라톤 매리어트 등 고급 호텔들이 밀집한 신흥 리조트 밀집지다. 바닷바람도 유독 이곳에선 부드럽고 바다 건너 라나이 섬으로 지는 석양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다. 긴 의자에 누워 마냥 햇볕에 몸을 태우거나 야자수에 묶은 해먹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각 리조트는 백사장으로 연결돼 있고 그 가운데 고급 쇼핑몰인 ‘고래마을(Whaler’s village)’이 있다. 휴식이 조금 따분해질 때 구경가기에 좋다.
동쪽 마우이의 와일레아(Wailea)해변도 이에 버금가는 곳이다. 포시즌, 르네상스 등 호텔 리조트 등이 늘어서있고 바로 앞바다에는 초승달 모양의 섬 몰로키니(Molokini)가 있다. 산호와 열대어의 군무가 아름다운 하와이 전체에서도 손꼽는 스노클링의 포인트다.
마우이(하와이)=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하와이의 옛 수도 라하이나
●카나팔리 해변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라하이나(Lahaina)시다. 하와이왕국 시절 지금의 호놀룰루가 개발되기 전까지 하와이의 중심 도시 역할을 했던 오래된 도시다. 19세기 초에는 포경업의 번성으로 라하이나 항구는 흥청거렸었다. ●부두 바로 옆에는 작은 숲이 있다. 주렁주렁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가 여러 그루 서로 이어진 듯 보이는데 사실 한 그루의 나무라고 한다. 보리수의 일종인 반얀트리(Banyan tree). 하와이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다. 높이는 18m 정도지만 나무 그늘이 미치는 범위가 무려 800평이나 된다. 라하이나를 돌아다니다가 잠시 쉬었다 가기에 제격이다. ●마우이 기념품 등을 파는 도로변 상점들은 70, 80년이 넘은 옛 건축물들로 고풍스럽다.
■ 길에서 띄우는 편지
독도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일본 때문입니다. 하와이에서도 그 ‘일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에 대해서 잠깐만 공부하겠습니다. 화산 폭발로 생겨난 하와이제도는 오아후 마우이 빅아일랜드 등 8개의 큰 섬을 포함해 모두 132개의 섬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18세기 후반 카메하메하(Kamehameha)라는 추장에 의해 하와이왕국으로 통일됐다가 이후 미국에 합병되면서 50번째 주로 편입된 미국의 마지막 땅입니다.
현재 하와이의 전체 인구는 130만 명. 순수 폴리네시아 원주민은 1%에 불과한 대신 일본계가 24%로 백인계 24%와 맞먹는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일본의 비중은 인구 수 이상입니다.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은 1년에 700만 명. 그 중 내국인(미국인)이 500만 명, 일본인이 150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수치로는 내국인이 많지만 실제 돈이 되는 손님은 일본인입니다. 고급 호텔을 찾고 양손 가득 선물을 사가는 이들이 일본 관광객이기 때문입니다.
하와이의 최고 번화가인 와이키키를 보면 극명합니다. 호텔의 손님 중 60%가 일본인입니다. 각종 명품 브랜드로 쇼핑타운을 이룬 주변 상점들은 사정이 더합니다. 상점의 종업원 채용조건 1순위는 일본어 능력. 미국 땅이지만 영어는 2번째로 밀립니다. 하와이 현지의 우리 교포들도 일본어 구사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호텔이고 골프장이고 부동산이고 일본이 장악 못한 곳이 없습니다. ‘하와이는 일본땅’이란 말이 쉽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떵떵거리는 일본인도 하와이에서 유독 피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진주만입니다. 태평양전쟁의 발발지로 2,400여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최악의 전사자를 낸 아리조나함이 침몰된 채 그대로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엄숙한 표정의 미국인들이 줄지어 참배하는 곳. 미국인에겐 ‘성지(聖地)’입니다.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지만 밤새 쇼핑몰을 휘젓던 일본인들을 이곳에선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씻을 수 없는 과거를 되돌아볼 용기가 없어서입니다.
다 자신들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이성원기자
■ 하와이 여행 | 오아후 섬 - 물밑 열대어 물위 서핑 지상 최고 휴양지
‘알로~하 하와이’.
영화 ‘친구’에서의 "네가 가라, 하와이", 또 다른 영화인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하와이는 너무나 익숙한 꿈의 휴양지다. 그래서 혹시나 하와이를 진부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오산이다. 하와이의 경관은, 또 사철 맑고 따뜻한 날씨는 다른 곳과 쉽게 비교되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인 화산폭발 외에는 지진, 해일, 태풍 등 자연재해가 거의 미치지 않는 지상낙원이 하와이다. 게다가 교통, 통신, 도로 등 거대한 미국이 떠받치는 편안함까지 갖췄다는데야.
하와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섬이 오아후(Oahu)다. 하와이의 관문 호놀룰루가 있는 곳이기 때문. 하와이 전체 인구의 80%가 몰려 사는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다.
오아후 여행의 중심은 뭐니해도 ‘와이키키(Waikiki)’ 해변. ‘와 하고 몰려들어 키득키득대는 곳’이 아니라 물(wai)이 솟는(kiki) 곳이라는 뜻이다. 100년 전만 해도 땅속 물을 끌어올려 농사를 짓던 곳이다. 눈 같이 하얀 백사장을 고층 호텔 건물들이 빼곡히 둘러쌌다. 모래 유입이 막히다 보니 백사장 유지를 위해 북쪽해안이나 몰로카이 섬 등에서 모래를 실어온다고 한다.
와이키키 주변은 거대한 쇼핑몰이다. 내로라 하는 유명 브랜드 상점이 즐비해 "이곳에 없는 브랜드는 명품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쇼윈도 불빛 휘황한 밤이면 각종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흥겨운 거리로 변신한다.
하와이의 섬들은 저마다 상징 분화구가 있다. 마우이가 할레아칼라였다면 오아후는 ‘다이아몬드 헤드’다. 와이키키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바닷가에 우뚝 속은 산이다. 좁은 터널 등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와이키키 해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경창파 태평양을 드넓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오아후 섬을 제대로 구경하는 방법. 해안 일주도로를 타고 달려보라. 한 굽이 돌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절경, 또 절경이 가슴에 꾹꾹 새겨질 것이다.
와이키키에서 다이아몬드 헤드를 지나 달리면 하나우마베이(Hanauma Bay)공원을 만난다. 초승달 곡선의 아름다운 비치다. 물속에 잠긴 용암 분출물에 산호가 자라고 현란한 색옷을 입은 각종 열대어가 ‘물 반 고기 반’ 살고 있는 곳. 스노클링을 하려면 20~30분 땡볕에서 줄을 서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입장료는 5달러. 입구에서 10분 가량의 하나우마베이가 만들어진 과정을 담은 영상물 한편을 봐야 비치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물속에 머리를 담그면 그 전의 수고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황홀해진다.
다시 일주도로를 타고 ‘보디 서핑’으로 유명한 ‘샌디(Sandy) 비치’를 지나면 코코헤드(Koko Head) 분화구다. 이곳에 숨어있는 ‘코코헤드 플루메리아 가든’을 둘러보자. 팔랑개비처럼 생긴 고운 흰꽃, 노란꽃이 기괴하게 생긴 모양의 나뭇가지를 뒤덮고 있다. 바람도 멎는 정적속 새큼한 꽃향기와 함께 생명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오아후의 동쪽 끝은 마카푸우(Makapuu). 언덕에 올라서 내려보면 고운 비취빛 바다에 토끼섬 하나가 둥실 떠있다. 저멀리에는 오아후에서 가장 긴 와이마날루 해변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일주로는 영화 ‘쥬라기공원’의 무대로 빌려줬던 원시림의 기괴한 산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쿠알로아(Kualoa) 비치에는 중국식 고깔모자를 닮은 섬이 두 개 나란히 떠있다. 그래서 이곳을 중국인 모자 섬(Chinaman’s Hat)이라고 부른다.
오아후 섬의 북쪽 끝 부분에 ‘폴리네시아 문화센터’가 빌리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하와이를 비롯 통가, 피지, 타이티, 사모아, 마르케사스, 아오테아로아 등 폴리네시아의 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다. 물위에서 열리는 카누공연이 인상적이고 사모아전시관의 익살맞은 전통문화 시연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북쪽 해안은 거센 파도로 전세계 서핑 광들이 몰려드는 곳.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선셋비치다. 집채만한 파도와 겨루는 젊음을 구경하며 마음으로 함께 서핑을 즐길 수 있다.
오아후(하와이)=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하와이 전문 여행사 '블루하와이'는 마우이 3박, 오아후 1박 등 4박6일 일정의 하와이 여행 상품을 242만2,200원(주말)에 출시했다. 마우이 카나팔리 해변의 하얏트 리젠시와 오아후 와이키키 해변 바로 앞의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숙박한다. 마우이에서 편안히 3일의 시간을 보내고 오아후 섬에서 쇼핑과 휴식으로 마무리하는 허니문 일정. 하와이안 디너인 '루아우쇼'와 몰로키니 스노클링 일정 등이 포함됐다. www.bluehawaii.co.kr (02)319-0022
●하와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하나.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지 말고 차를 렌트해 직접 달려보자. 화산섬의 특성 상 해안을 따라 도로가 형성돼 길 찾기도 쉽다. 하와이 현지에서 가장 큰 렌트카 업체는 알라모(Alamo)다. 알라모 렌터카 한국사무소를 통해 미리 예약하면 15%가량 절약할 수 있다. 모처럼 기분을 내기위해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빌릴 경우 현지에서는 1일 130달러 정도. 한국에서 예약하면 110달러면 된다. www.alamo.co.kr (02)2127-122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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