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새 물결을 주도하는 김지운 류승완 감독이 ‘달콤한 인생’과 ‘주먹이 운다’로 4월 1일부터 ‘말아톤’ 과 ‘마파도’의 한국영화 흥행 퍼레이드에 나란히 도전한다. 2000년 인터넷 영화 ‘커밍아웃’과 ‘다찌마와 Lee’로 일합을 겨뤘던 두 사람의 각자 4번째 극장 개봉작. 우연하게도 다섯 글자 제목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영화를 다섯 개의 키워드로 비교 분석했다.
두 영화는 주인공들의 추락을 중요한 모티프로 채용했다. 그러나 추락의 속도나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주먹이 운다’는 태식(최민식)과 상환(류승범)을 처음부터 인생나락으로 깊숙이 떨어트린다.
그래서 영화는 잽을 던지며 관객들의 감정선을 툭툭 건드리기보다는 처음부터 강펀치를 날린다. 관객의 가슴에 심한 멍을 들이지만, 초반부터 지나치게 감정의 힘을 소진한 탓인지 절정이자 결말인 마지막 장면으로 갈수록 뒷심이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달콤한 인생’은 ‘엘리트 조폭’ 선우(이병헌)의 장밋빛 인생이 전반부를 장식한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지만 야경을 보며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삶은 하루 아침에 생지옥으로 곤두박질친다. 화려함과 음습함이 일순간 엇갈리면서 영화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감정의 극단적 변화가 야기하는 지나친 총격장면은 외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가 총구를 통해 뿜어내는 분노는 7년간 충성을 바친 보스(김영철)로부터 배신을 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분노는 생의 막바지라는 절망을 향해 치닫는다. 반면에 ‘주먹이 운다’의 두 주인공은 지난 삶에 대한 회한과 그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분노를 터트린다. 분노의 방향이 서로 반대쪽을 향한 만큼 관객들은 두 영화에서 영하와 영상이라는 극단적 온도차를 느끼게 된다.
두 영화는 날 것 그대로의 야수 같은 수컷 모습이 퍼덕거린다. 태식의 아내 선주(서혜린)와 보스의 애인 희수(신민아)는 남자들로 하여금 주먹을 휘두르고 권총을 난사하는 이유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주변인물로 짧은 시간 화면 속을 맴돌 뿐이다. 거친 남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주먹이 운다’의 두 남자는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뜨거우면서도 투박하고 ‘달콤한 인생’의 선우는 차가우면서도 세련됐다.
‘주먹이 운다’의 광장 교도소 링은 출구를 찾기 힘든 폐쇄된 공간이다. ‘달콤한 인생’도 카페와 공사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나이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을 두 감독은 땀과 피라는 각기 다른 물감으로 채색한다. ‘주먹이 운다’의 류 감독은 거친 입자의 화면과 들고 찍기라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절망 끝에 선 태식과 상환의 고통을 여과없이 전달하려 한다. 반면 ‘달콤한 인생’의 김 감독은 스스로 ‘우아한 느와르’라고 지칭할 만큼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라는 탐미적 표현주의를 통해 과장된 비장미를 선사한다.
‘주먹이 운다’에서 최민식은 기대대로, 류승범은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특유의 살인미소는 사라졌지만 소년의 순수한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이병헌과 TV드라마의 카리스마에 못 미치는 김영철의 연기가 조금 밀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달콤한 인생’은 주연을 떠 받치는 조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특히 모욕을 준 선우에게 호시탐탐 복수를 노리는 백 사장역을 맡은 황정민은 야비한 웃음과 말투로 비열한 뒷골목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인상 깊게 전해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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