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년 동안 미국 언론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보도된 것도 듣기 좋은 얘기와 피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은 철저하게 외면됐다. 가령 3월18일자 뉴욕타임스를 보면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아프간을 방문했을 때 "현 국제정세 중 아프간의 민주적 발전 이상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런 보도 행태가 보여주는 것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세워진 아프간 현 정권과 무장세력간 투쟁이 아프간의 민주화에 파괴적 폐해를 촉발한다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 미국 언론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 무자헤딘 무장세력이 촉발시킨 내전으로 수도 카불에서만 수만 명의 민간인이 죽었을 때, 90년대 말 탈레반 정권이 폭압적인 반(反)인권법을 제정했을 때, 수만 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파키스탄 접경지역으로 도피해 공포와 고통에 허덕일 때도 그들은 침묵했다. 탈레반 정권이 인류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했을 때와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부시 대통령이 주장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을 적용해 아프간의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깊이있게 보도해야 하는 것이 책임있는 언론의 태도 아닌가? 비록 민주주의가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기는 하지만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아프간 국민이 갖고 있는 열망은 대단하다. 문제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민주화라는 이름의 정치현상이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무장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 달 전 아프간을 방문해 확인한 것은 무장세력이 민간인을 통제함으로써 민주화를 열망하는 지식인들이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간 국민들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를 지도자로 선출했다.그가 아프간 내 무장세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카르자이는 요직에 무장세력 출신을 상당수 기용했고 최근에는 압둘 라쉬드 도스툼을 합창의장에 임명했다. 도스툼은 전쟁범죄로 국제법정에 기소할 수 있는 혐의자이다.
아프간의 처절한 현실은 정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프간 난민의 귀향을 두고 부시 대통령은 민주화의 증거라면서 의미를 부여했지만, 실상 그들은 조국 아프간에 돌아와서도 떠돌이 신세로 카불 등 몇몇 도시에 분산 수용되어 있다. 직업을 갖기도 불가능하며 건강도 심각한 상태다. 카불 이외에는 교육시설 자체가 거의 없다. 미국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이렇다. 미국이 그처럼 동정과 연민을 갖고 9·11 이후 돕고자 했다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실은 미국의 무관심으로 고통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탈레반을 타도한 또다른 무장세력은 세력 유지를 위해 마약 밀매를 서슴지 않고 있다. 무장세력이 자행하는 죄악에 대한 언론의 미온적 반응과 무관심이 아프간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 9·11 이후 탈레반 붕괴를 위한 미국의 개입처럼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고통과 공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 언론은 깨달아야 한다.
소날리 콜하트카아 아프간여성특별위원회(미국 NGO)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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