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을 다녀왔다. 6년만의 방문이었다. 짧고 아쉬운 만남이었지만, 기러기 아빠니 뭐니 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소신껏 키우기 위해 애쓰는 여동생을 보았을 때, 예전 같으면 집안의 애물단지로 전락했을 30대 후반 싱글 여자 조카가 기죽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지방대 교수 친구가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학생들의 기를 살리는 일이라고 말했을 때 정말 반갑고 기뻤다. 언론보도나 귀동냥을 통해 상상하던 것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였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껴지는 변화의 속도는 어지럽기까지 하다.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바깥에 있다 온 사람들의 눈에는 확연하게 이 변화가 감지된다. 이번에 받은 인상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국 사회에 축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매화꽃, 벚꽃 등 가지가지 꽃잔치에 봄나물 잔치, 소싸움 축제 등 전에는 들어보지 못하던 축제와 잔치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축제가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내 사고방식이 한국을 떠났던 80년대에 고착된 탓일까. 세수 확보를 꾀하려는 지방 자치단체와 상업주의가 결탁해 만들어낸 비슷비슷한 이벤트들이 온 나라를 놀자판 먹자판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우기 힘들었다.
여전한 고급 여성인력의 낭비도 안타까웠다. 낮에 하는 음악회며 전시회, 연극 등의 문화행사와 고급 식당들이 온통 주부들로 채워지는 현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금할 길 없었다. 물론 문화의 향유라는 점에서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사회적, 지적 욕구가 어찌 문화 상품의 소비로만 충족될 수 있겠는가. 일부 중산층 엄마들의 극성스런 치맛바람도 분출되지 못한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발산되는 현상으로 보였다.
이밖에도 신문지면을 뒤덮은 아파트며 상가 분양광고(이 광고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오늘이라도 당장 살던 집을 팔고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만 할 것 같았다)며,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10대들의 놀라운 손놀림, 웰빙 열풍 등 이방인의 눈에 신기하게 보인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는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역동성이지 싶다. 그 열정과 역동성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고, 외국에 사는 한인들의 뿌리 내림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수민 시카고 국제로타리 세계본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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