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살핀 김수영 시들의 특징 하나는 비시적(非詩的) 일상어의 과감한 수용이었다. 도무지 시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도시적) 일상어들을 한국어 시어 사전에 버젓하게 등재시킨 첫 시인이 김수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적 아름다움이 서정적 아름다움과 고스란히 겹치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김수영 이후 도드라지게 확산된 것은 사실이다. 도시인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화장기 없는 언어에 담더라도 그 언어를 어떻게 조직하고 배열하느냐에 따라 깊다란 미적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김수영은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전통적 서정시가 배제해온 일상어의 한 극단적 형태는 욕설이다. 그런데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라는 시의 넷째 연을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라는 구절들로 천연덕스럽게 시작하고 있다. 이 구절들에서 노출된 욕설들은 시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담론의 경우에도 점잔빼는 자리에서는 듣기 어려운 금기어들이지만, 희미해져 가는 공동체적 기억을 되살리려는 안간힘을 담은 이 작품에선 화자의 뿌리 의식과 복고 욕망의 드셈을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기는 제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시집의 표제로까지 선택된 ‘거대한 뿌리’라는 시가 김수영 시의 표준적 풍경과는 사뭇 다르듯, 이 시에서 노출된 바와 같은 욕설들도 그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수영은 욕설까지도 시어로 받아들일 만큼 리버럴했지만, 그것을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할 만큼은 보수적이었다. 그런데 김수영 이후 일상시를 쓴 시인들 가운데는 그런 욕설의 금제(禁制)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어쩌면 의식적으로 짓밟으려 한 이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반성’(1987년)의 시인 김영승(46)이다.
‘반성 서(序)’라는 제목의 서시를 앞머리에 얹은 시집 ‘반성’은, 표제 뒤에 붙은 숫자만으로 변별될 뿐 죄다 ‘반성’이라는 제목을 단 82편의 시로 이뤄져 있다. 시인이 ‘반성 서’에서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이 시집의 시들은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다. 그러나 이 시들을 전통적 의미의 ‘서정시’로 받아들일 독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곧이곧대로 얘기하자면, ‘반성’의 시들은 의식적으로 서정을 축출해버린 시들이다. 역설적이지만, 그 전통적 의미의 서정을 몰아내는 시인의 황폐한 정서를 끔찍하리만큼 정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선 이 시들을 알짜배기 서정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시집의 표제이자 수록 작품 전체의 공통 표제인 ‘반성’은 글자 그대로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다. 시인 자신임이 분명한 화자는 자신의 일상을, 그리고 더러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신경질적으로, 신경이 뭉개질 만큼 돌이켜 살핀다. 그러나 그가 쓴 시가 반성문은 아니다. ‘반성문’이라는 말에는 뉘우침이라는 뉘앙스가 깃들여있지만, ‘반성’의 화자는 뉘우치는 법이 없다. 그는 그저 돌이켜 살피고 그 과정을 기록할 뿐이다. 그러면 그 기록의 주체인 화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1980년대의 공식 역사가 누락시킨 개인이다.
한국의 1980년대는 우선 반동적 군부와 그 동맹자인 대자본가들의 시대였다. 동시에 바로 그만큼의 비중으로, 군부-재벌 동맹에 헌걸차게 저항한 민주주의자들과 각성된 노동자들의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 그 이상의 비중으로, 군부독재체제가 비위에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은 없다고 판단한 다수 ‘보통사람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 이런 공식적 범주 어디에도 끼이지 못하는 개인들도 살고 있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세상 자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하기 싫은 사람들, 그래서 심리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체제 바깥으로 퉁겨져 나온 사람들, 그러나 제 소외의 원인을 특정한 사회구성체나 정치제도에서 찾기보다는 사람살이의 생김새나 호모사피엔스의 꼬락서니 자체에서 근원적으로 찾으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보의 기획 자체를 비웃게 마련인 이런 개인들은 ‘숙명적 아웃사이더’라 불릴 만한데, 공식 역사는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김영승은 아마 자신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판단한 듯하고, 바로 이들에게, 곧 자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반성’ 시편을 쓴 것 같다.
‘반성’의 화자는 어머니에게 얹혀 사는 주정뱅이 룸펜 지식인이다. 그로 하여금 세상과 자신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하는 근원적 존재조건은 모지락스러운 가난이지만, "그리고 하나님/ 이 시인도 이 지상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해주소서"(‘반성 815’) 같은 대목을 보면 그를 가난에서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의 시인됨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시인답게 마음이 몹시 여리고, 여린 만큼이나 투정이 심하다. "자조적 실존"(‘반성 서’)의 일기라고 할 만한 ‘반성’은 그런 투정으로, 더 나아가 독설로 그득하다. 그 투정과 독설이 실어 나르는 정서는 염세와 혐인(嫌人)이다. 그 염세와 혐인은 "천승만마를 거느린/ 수천 수만의 사단병력인 너와/ 나 한 개인의 싸움에서"(‘반성 799) 패배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천재"(반성 815)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가난한 주정뱅이 룸펜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욕설은 흔히 외설로 이어진다. ‘반성’의 화자는 욕을 하며 노는 어린애 같기도 하다. 그러나 화자는 배울 만큼 배운 먹물이기도 하고, 현학 취미를 아직은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젊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연옹지치(癰痔), 지호지간(指呼之間), 호협활달(豪俠豁達), 곤옥추상(琨玉秋霜), 빈계호추(牝鷄呼雛), 차별침식(差別浸蝕) 따위의 사자성어를 비롯해 그 기원을 한반도 바깥에 둔 먹물 언어가 난무하기도 한다. 주정뱅이 룸펜의 욕설과 먹물의 박래언어는 기묘한 콘트라스트를 빚으며 서로 엇물려, 시집 ‘반성’을 낯선 모더니즘의 공간으로 만든다.
‘반성’의 화자가 늘 술에 절어 있는 것은 아니다. 명정(酩酊)의 바깥에서 그는 "차라리 원시인들이 땀 뻘뻘 흘리며 굴리고 다니던/ 도나스 같이 생긴 그 커다란 돌덩어리를/ 돈으로 사용했으면/ 참 많은 게 탄로날 텐데//(...)//노동생산성 상승률과 실질임금 상승률이/ 하등의 관계 없이 겉도는/ 그 모든 노예 시장,/ 인신매매조차도 독점한/ 1, 2, 3......n차 시험 합격자에 한하여/ 면접 시험 치르는/ 부실한 유령회사도"(‘반성 783’) 같은 사고실험을 통해 일종의 문명비평을 시도하기도 하고,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 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반성 100’)는 보고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기도 한다.
그러나 ‘반성’의 대부분은 자학과 타기(唾棄)와 나르시시즘을 오가며 ‘몰수당한 젊음, 아득히 까마득히 유예된 꿈, 육시당한 젊은 육신’(자서)을 취기에 버무리고 있다. 시인은 ‘반성’ 이후에 낸 시집들에다 ‘취객의 꿈’(1988년), ‘아름다운 폐인’(1991년) 같은 제목을 붙였는데, 이 제목들은 기실 시집 ‘반성’에도 꼭 어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집 ‘반성’은 술 취한 폐인의 주정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반성’은 80년대를 살아낸 한 개인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것을 멀미가 날 만큼 정직하게 묘사함으로써, 개인성을 압수해버린 그 시대의 병리에 대한 탁월한 보고서가 되었다. 시집의 화자는, 이 숙명적 아웃사이더는 제 상처의 하이퍼리얼리즘적 기록을 통해서, 스스로 상처가 되어서, 그 상처를 만든 시대의 병리를 드러내고 있다.
시집 ‘반성’은 늘 아름답고자 했던, 늘 꿈꾸고자 했던 한 비순응주의자의 패배의 기록이다. 그 기록 끝머리에 놓인 ‘반성 608’은 시집 전체를 요약하는 처절한 슬픔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것을 읽는 내 마음은 후들거린다. ‘반성’의 시인과 일면식도 없지만 그에게 세대적 연대감을 느끼고 있는 나는, 문득 20년 저편의 전장(戰場) 어느 곳에 부상당한 그를 떨어뜨려 놓고 와버린 몰인정한 전우가 된 느낌이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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