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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무모한’자주외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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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무모한’자주외교라니?

입력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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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외교 국방 문제에 ‘자주(自主)’라는 개념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미·일 중심의 소위 ‘남방 3각동맹’ 재검토 천명과 함께 자주외교의 본질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주란 본래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한다’는 뜻이며, 국제사회에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주권을 자신의 주체적 의지로 행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자주는 근대국제법의 대원칙인 주권평등의 발현 형식일 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피식민국가들의 독립과 국제사회로의 진입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민족자결’ 원칙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요즘 이 자주 앞에 ‘무모한’ 내지 ‘섣부른’ 같은 수식어가 적지 않게 붙는다. 특히 지난 수십여 년간 유지해온 한·미·일 동맹 위주의 안보 메커니즘을 좀더 유연한 다자간 동맹의 틀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은 직후부터 더욱 많이 눈에 띈다. 현정부의 기본 인식은 동북아에 있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구도가 냉전의 유산이며, 21세기 신냉전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폐쇄적 동맹구도에서 점진적으로 탈피해 다원적 안보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은 이러한 변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냉엄한’ 동북아 국제정치의 현실을 간과한 섣부르고 무모한 시도라고 비판한다. 이 주장의 기저에는 정부의 다자안보 구상이 ‘혈맹’의 한미관계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다. 특히 정부가 ‘자주’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한미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나아가 한일관계도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현재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국가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2000년 부시정권 출범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는 우리뿐 아니라 유럽의 전통적 우방들마저 등 돌리게 하고 있다. 결국 한미동맹 결함의 일차적 책임은 우방을 등한시하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자세에 있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한일관계의 모든 측면이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런 주장은 강한 측의 시각을 통해 현상을 바라본 후, ‘냉엄한’ 현실이라는 미명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시키는 전형적인 ‘오지사고’이며 주변부적 인식이다.

근대국가가 출범한 이후, 모든 국제관계의 종국적 목표는 자국의 주권을 수호하는 것이다. 주권 수호는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며 어떠한 ‘혈맹’관계도 이 명제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급변하는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그에 따라서 동맹관계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국가의 외교정책 결정에 있어서 최우선의 덕목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공고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맹과 자주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자주외교는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더욱 긴밀한 협력을 담보하기 위한 외교전선의 교두보이자 동맹관계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적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강대국만 자주외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힘이 약할수록 자주외교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태국이 좋은 예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경제계의 지도자 한 분이 현재 한일의원연맹 우리측 국회의원 중 일본말을 할 수 있는 의원이 거의 없다고 질책 했다. 그에게 반문하고자 한다. 일본의 역대 의원 중 한국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어떠한 동맹도 그 관계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하지 않는 이상 실익이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더 이상 자주외교를 동맹과 대립되는 ‘무모한’ 시도로 폄훼하는 주변부적 인식이 우리사회를 지배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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