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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 비평]‘DMB 축제’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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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 비평]‘DMB 축제’의 그늘

입력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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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 KTX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좌석의 배치가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좌석 중 절반이 기차 움직임과 반대 방향으로 앉게 되어 있어서 승객들이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승객의 불편을 무시한 채 수익성만을 앞세웠다는 비판이 각종 언론을 통해 제기되었다. 그런데 하나 이상했던 점은, 전면 개통 이전에 어떤 기자도 이를 문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빠르기가 어떻다는 둥 진동이 어떻다는 둥의 시승기만 줄을 이었을 뿐 좌석 배치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던 것이다. 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서비스가 새롭게 시작될 때, 그 내용과 특성과 한계를 꼼꼼하게 지적해 주는 것이 언론의 당연한 임무이다.

28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자가 선정, 발표되었다. 각 신문들은 이제 개인용 TV 시청시대가 개막된다는 소식을 전하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갑자기 KTX의 좌석 배치가 생각나는 까닭은, 우리가 DMB 서비스의 무게를 과연 짐작이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이 그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사업자로 선정된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자사 홍보를 할 뿐 DMB 서비스에 대한 차분한 분석이나 문제점 제시에는 소홀하다. 신문들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조금 더 나은 해설을 제공하고 있지만 "DMB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까지 나아가지는 않다.

DMB의 핵심이 개인성과 이동성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거실에서 함께 보던 텔레비전이 점차 각자의 방이나 인터넷 VOD를 통해 개인적으로 시청하는 패턴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DMB는 개인 시청행위를 보다 부추길 것이다. 이동하며 시청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휴대폰 보급이 이미 보여준 시·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 변화를 한층 가속화할 것이다. 인기 드라마가 ‘귀가시계’로 되는 일도 적어질 것이고, 통화 소리로 떠들썩했던 지하철은 어쩌면 텔레비전 소음으로 가득 찰지 모른다. 지금의 예상대로 5년 내에 1,000만 가입자 시대가 된다면, DMB가 일반 시민들의 생활방식과 사고양식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감히 생각하기가 버겁다.

그런데 DMB에 대한 분석 보도에서 주로 제시하는 쟁점은 과연 수익성이 있겠는가의 문제로 집약된다. 위성DMB와의 경쟁관계를 분석하고, 유료화가 가능할지를 전망한다. 선정 업체들의 청사진을 소개하고 탈락 업체들의 산업적 미래를 걱정한다. 정작 다수 시청자들의 삶과 생각이, 그리고 이 사회의 문화적 양상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한 통찰력 있는 보도는 없다.

대부분의 언론이 애써 무시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콘텐츠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어 나르는 플랫폼의 수가 끝없이 확장하는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지상파, 케이블, 위성, 인터넷이 같은 드라마 같은 뉴스를 보여주는 동안 기술개발은 지상파DMB, 위성DMB, 인터넷프로토콜TV(IPTV)로 이어졌다. 그런데 여전히 같은 콘텐츠들이다. 지상파TV 콘텐츠가 갖는 막강한 힘 앞에서 거의 모든 새 서비스들은 지상파 재전송에 사운을 건다. 식당의 수가 많아지면서 분위기나 가격도 다양해졌지만 음식은 모두 같다면 음식문화가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까?

국가 기간방송인 KBS가 여전히 국내 최대의 방송 콘텐츠 제작업자라는 현실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외주제작을 독려하는 일관된 방송정책에도 불구하고 밖에 내세울 만한 든든한 독립 콘텐츠 제작업자가 없다는 사실도 미스터리이다.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의’ 공영방송사들은 계속 비대해지고, 언론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소개나 얄팍한 산업적 전망만을 던져준다. 콘텐츠와 수용자는 뒤로 밀리고 그 외피에 있는 기술과 자본만이 부각되는 현실은 우리 방송문화의 지표이고 우리 언론의 한계이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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