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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적립식 펀드가 만병통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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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적립식 펀드가 만병통치약?

입력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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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시가 호황을 누리던 1999년 7월 당시 굿모닝증권이 판매한 뮤추얼펀드 ‘마이다스코리아 성장형 1호’에 가입했다. 창구 직원은 "저금리를 극복하고 직접투자의 위험도 피하려면 간접투자상품이 적격"이라고 했다. 더욱이 강세, 약세장을 가리지 않고 수익을 올려 ‘전천후 매니저’로 불리는 스타급 펀드매니저가 운용을 맡았다지 않는가.

당시는 바야흐로 ‘펀드 전성시대’였다.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와 학생들까지 증권사 객장으로 몰려가 뮤추얼펀드 인덱스펀드 스폿펀드 하이일드펀드 등 온갖 종류의 펀드에 앞다퉈 가입했다. 99년 3월 선보인 바이코리아펀드는 4개월 만에 10조원을 모았다. 언론은 99년 국내 증시를 총결산하면서 "증시 호황으로 간접투자시대가 뿌리를 내렸다"고 평가했다. 1년 만기가 지난 2000년 여름 창구 직원이 건네준 내 펀드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17%였다.

#2. 며칠 전 거래은행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매달 일정액을 주식에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가입을 권했다. 보름 전에는 사무실을 방문한 보험사 직원에게 붙잡혀 매달 일정액을 주식에 100% 투자하는 적립식 보험상품(변액보험) 홍보를 들어야 했다. 1년 이상 운용상품의 연간 수익률이 20%를 넘었으며, 최소로 잡아도 은행 금리의 3배인 9.5% 가량의 수익률 달성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은행 예금은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가 아니냐"며 "적립식 펀드는 목돈이 없어도 장기 분산투자를 하기 때문에 위험은 줄어드는 대신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간접투자가 다시 증시의 화두다. ‘난 은행적금보다 주식저축이 더 좋다’, ‘목돈 만들기 적립식 펀드가 최고다’. 현재 교보문고의 경영·경제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선 이후 증시가 시중 부동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적립식 펀드를 중심으로 하루 수백 억원의 자금이 꾸준히 들어오면서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1년 5개월 만에 10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모건스탠리증권은 최근 "한국 가계의 주식보유 비중이 세계적으로 낮지만, 적립식 펀드를 통해 자산이동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증권업계에선 최근의 적립식 펀드 열풍에 대해 "은행의 초저금리에 실망하고 직접투자에서 참담한 패배를 거듭해온 보통사람들의 투자문화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주식형 펀드가 투기 수단이 아닌 저축 수단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는 낙관적인 진단도 나온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99년에도 똑 같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상 유례없는 증시 활황이 ‘펀드 전성시대’를 열었지만, 정보기술(IT) 버블의 붕괴와 함께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증시를 빠져나갔다. 저금리가 가져온 유동성의 힘으로 증시가 사상 세 번째 지수 1,000을 돌파한 것이지, 기초 체력을 다지며 올라온 진정한 실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증시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간접투자가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적립식 펀드 열풍은 왠지 허허하게 느껴진다. 금융기관간 장벽 허물기가 본격화하면서 은행 보험 투신 증권사를 가리지 않고 죽기살기 식의 적립식 펀드 판매경쟁이 치열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판매 과정에서 원금 손실의 위험성이 간과되고 있는 점도 걱정스럽다.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펀드 전성시대’가 금융회사들의 살아남기 경쟁과 시중의 과잉 유동성 탓이라고 한다면 지나칠까?

고재학 경제과학부 차장대우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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