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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4) 유병팔 부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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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4) 유병팔 부산대 석좌교수

입력
2005.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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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문교부와 외무부 미국 대사관 세 군데서 시험을 치르고 미국 센추럴미주리대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내가 노화학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나면서 군대에 갔다가 4년만에 제대한 후였던 터라 미국에서 대학과정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만 좋았다. 공부는 내게 맞았던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석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공은 생화학이었는데 나는 인체와 지방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심장병이 급증하고 있어서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인기 연구과제였고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65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여자의과대학(현재의 펜실베이니아의과대학)에 교수로 부임했다.

미국에서 교수를 하려면 연구비를 따내는 것도 큰 일이었다. 노화학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시만 해도 노화를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연구비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 무렵 연구하던 것이 근육신축이라는 주제였는데 이 주제는 노화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인간의 근육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노인이 되면 대체로 그 양이 30% 정도가 줄어든다. 근육원인 단백질을 계속 공급해주는데도 왜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주는지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노화방지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주제였다. 당시에는 이 주제를 놓고 근육회복에 칼슘이 꼭 필요하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을 뿐 왜 칼슘이 없으면 안 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칼슘과 근육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서 노화의 원인을 규명하겠다는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그 결과 5만 달러 라는, 파격적인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다. 칼슘을 섭취해야 근육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화와 영양이 상관이 있겠다는 것을 생각해냈고 그렇다면 노화를 영양으로 조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확신을 갖고 과거의 관련 논문을 찾다 보니 이미 1930년대에 미국 코넬대학에서 맥케이 교수가 쥐들을 절식시켜서 수명을 연장시킨 실험을 한 보고서가 있었다. 맥케이 교수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수명과 체구가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맥케이 교수 역시 이 통설대로 체구가 큰 것이 오래 산다는 가설을 세워놓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해봤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절식을 시킨 쥐는 체구가 작아졌는데 이 체구가 작은 쥐가 영양을 듬뿍 받은 체구 큰 쥐보다 더 오래 살았다. 맥케이 교수는 실험 결과가 가설과 일치하지 않자 연구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맥케이 교수의 논문을 토대로 ‘절식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게 되었다. 내가 세운 가설은 절식이 노화를 지연시켜서 장수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예측한대로였다. 절식한 쥐가 더 오래 살았다.

최근까지의 실험결과를 토대로 말하면 영양을 10% 줄이면 수명이 10%, 20% 줄이면 수명이 20% 늘었다. 절식을 하면 할수록 수명은 늘어났다. 쥐는 성장기부터 실험을 했기에 어려서 영양결핍으로 죽어나가는 쥐가 많았지만 일단 살아남은 쥐는 오래 살았다. 최고 40%까지는 어려서 죽는 일 없이 절식이 가능했으며 수명은 40%, 많게는 50%까지도 늘었다. 절식을 한 쥐들에게는 암세포를 주사했는데도 암세포가 자라나지 않았다.

쥐에 대한 실험을 인간에게 곧바로 적용시킬 수는 없겠지만 성장기가 끝나면 곧바로 절식에 들어가는 것이 노화를 예방하는 데 좋다. 인간은 쥐와 달라서 어려서부터 절식을 하면 뼈나 근육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좋지 않다. 어려서는 양껏 먹고 25세나 30세 이후를 지나서 절식을 하면 이상적이다. 절식을 하면 수명을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병이 안 나는 것은 확실하다. 절식은 암도 예방해준다. 암세포는 영양을 필요로 하는데 계속 영양소가 들어오면 암세포를 키울 뿐이다. 영양이 부족하면 세포들끼리 어떻게 하면 이 생명체를 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결과로 스스로의 저항력을 만들어낸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실험결과가 입증해준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운동을 하면 성장호르몬이 분비가 잘 되고 신진대사가 좋아지며 당연히 그 결과 골다공증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운동은 심지어 치매조차 지연시킨다는 자료까지 나왔다. 운동을 하면 유해산소가 많이 나와서 운동이 나쁘다는 설도 있지만 유해산소가 생기는 이상으로 여러 가지 항산화효소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나도 매일 꾸준히 운동하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실험으로 밝혀낸 노화예방책을 실천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노화학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노화를 성숙기가 끝난 후에 이뤄지는 노쇠라고 생각을 했지만 연구 결과 노화는 인생 전체에 걸쳐서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령 골다공증만 예로 들어도 이것이 폐경기 이후에 생기는 병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미 30대부터 신진대사나 골밀도가 변화하면서 골다공증의 단초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노화학의 과제는 노화의 과정을 잘 이해하게 함으로써 비록 노화는 맞더라도 그것이 질병이나 노쇠로 연결되지 않게 예방하자는 데 있다.

노화학이란 일생을 건강하게, 젊었을 때와 같은 활동력을 갖고 살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죽음이 오는 순간까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이 노화학의 과제이다. 노화학을 연구하면서 좀더 깊고 넓게 인간 생리를 공부하니까 좋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노쇠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 때가 오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다.

노화학은 또한 사람이 늙어가더라도 천대받지 않는 방안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약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나이가 들면 차별을 받는다. 나이만 차면 능력에 상관없이 퇴출을 당해야 한다. 정년제도라는 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급증한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비스마르크가 창안한 제도인데, 사람에 따라 능력과 신체적 조건이 다 달라진 현재에도 나이에 따라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힘이 약해져서 가족한테 의지해야 하는 노인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경쟁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노인이 대접받으려면 생산력을 갖고 독립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고 육체가 말을 들어야 한다. 노화학은 그런 점에서 노인들이 나이는 먹더라도 노쇠는 예방해서 건강한 성인으로 대접받도록 만들자는 학문이다.

올해부터 부산대학교의 석좌교수를 맡아 나는 노화에 대한 새로운 연구과제에 도전한다.이른바 분자염증가설이라는 가설을 부산대 약대 정해영 교수와 함께 세웠다. 인체의 각 기관들은 노화속도가 각기 다르다. 뇌가 노화하는 속도와 심장이 노화하는 속도, 콩팥이 노화하는 속도가 다르다. 모든 기관이 다 좋더라도 단 한 기관만이라도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게 나빠지면 죽음이 온다. 노화학은 모든 기관이 고르게 잘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다. 각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면 병이 오는데, 왜 기능이 떨어지면 병이 오는 것인지 그 연결고리를 노화학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최근 들어 의사들은 병의 원인으로 염증을 많이 꼽는다. 동맥경화나 관절염 당뇨병 치매 암 등도 염증과 연결을 시켜서 이들을 염증증후군이라고 묶어 부르기도 한다. 만일 각 기관에 염증이 생기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다면 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분자염증가설은 염증이 기관에서 병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분자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병이 나기 전에 분자 상태에서 노화가 생기는, 즉 활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우리는 모든 병을 분자의 상태에서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연구를 정해영 교수를 비롯한 텍사스주립대 시절 노화학연구소 제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일찌감치 한국에 노화학의 씨를 뿌려야겠다는 생각에 제자들을 키워왔는데 이제 이 제자들과 더불어 노화의 난제들을 함께 풀어갈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다.

● 유병팔 박사는

유병팔 박사는 노화학((老化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193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56년 미국 센추럴미주리대학에 유학했으며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여자의과대학 교수를 지내며 노화학에 눈을 떴고, 1973~1999년 텍사스주립대 노화연구소 소장 등을 지내며 영양과 산화스트레스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미국 노년학회 회장, 미국 노화학회 생물학 분야 회장 텍사스주립대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올 봄학기부터 부산대 최초의 석좌교수를 맡아 부산대를 노화학 분야의 메카로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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