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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뢰 없이 제2도약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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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뢰 없이 제2도약 없다

입력
2005.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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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를 치르는 고교 교실. 학생 30명에 감독은 둘, 교사와 학부모다. 복도에는 휴대폰 전파 탐지기를 든 감독관 둘이 더 있다. 교장실에는 옵서버인 학부모 대표들과 당국에서 파견된 참관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시험이 끝나면 감독관들은 답안지를 봉인 봉투에 담는다. 성적기록 때도 감시팀은 눈을 부릅뜨고 있다. 물론 출제 선생님들은 모처에서 합숙 작업을 했다.

이 상황은 최근 교육관련 비리를 막기 위해 제안된 방법들을 약간 과장한 것이다. 교육에 큰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하나, 실체보다 부차적인 문제들에 자원과 관심을 소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가 실질적인 성과와 무관한 부분에 사용되면 사회의 장래는 어둡다.

사회 진화에 따라 정부 업무도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됐다. 정부 구조와 운영체제가 복잡해지고 성과 판단도 쉽지않게 됐다. 문제는 국민이 정부 업무의 복잡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상황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자들이 독점적 정보를 활용해 개인 이익을 챙기는 등의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이 때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 내 감시기구를 설치하거나 외부의 통제체제를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전자는 감사원, 부패방지위원회, 검찰 등의 기능이고, 후자는 언론, 시민단체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도 대가 없이 수행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더 많은 자원을 갹출하거나 정부가 다른 일에 사용할 자원을 돌려 이런 추가 장치를 유지, 작동시켜야 한다. 이렇게 부가장치에 소요되는 비용이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다면 체제는 붕괴의 길로 접어든다.

사회 발전은 분야별 기능분화와 전문화를 촉진했다. 정부는 공동체 유지의 근거가 되는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기능을 담당하고, 교육 역시 사회적 통합과 재생산의 바탕을 쌓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와 교육은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기본 기능이어서 어느 나라나 엄청난 자원을 투입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재 생산의 중추 기제가 본질적 성과가 아닌, 부가적 측면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면 심각한 문제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정부개혁이 시도돼 왔다. 역대 교육부장관도 교육을 제 궤도에 올려놓으려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러나 두 부문 모두에서 흡족한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썩 나은 결과를 얻게 될 것 같지 않다. 제시된 대안들이 틀리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천이 문제였을 따름이다. 어느 대안에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신뢰 기반을 구축하고 공고하게 하는 것이다. 신뢰 회복 없이는 도약은 물론, 지금까지 이룩해 온 것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선생님들은 자기 과목 시험 출제와 채점을 맡고, 시험감독은 한 명만 한다면 앞의 상황에서보다 기말고사 비용이 크게 줄어 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선생님들을 믿는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공직자들이 업무를 공익에 입각해 판단하고 처리한다면 복잡한 감시체제는 불필요하다. 이 역시 공직자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에서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그 나라 신뢰 수준이 제공하는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비용의 감축효과다.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으니, 이제는 신뢰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그들을 놀라게 해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들의 성찰과 양보, 개인의 반성과 희생 등이 서로 어우러져야만 신뢰는 뿌리를 내린다.

송하중 경희대 행정대학원장 다산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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