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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민중미술관 세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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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민중미술관 세울 때

입력
2005.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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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작가 신학철 강요배의 유화 6점이 최근 국회의사당 의장실에 정식 절차를 거쳐 걸렸다. 국회의장의 바람대로 그의 집무실과 회의실의 분위기가 새로워졌을 테지만, 시각적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아름답고도 역동적인 풍경화, 정물화이기 때문이다. ‘한국근대사’ 연작으로 유명한 신학철은 민중미술의 대부 격인 작가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번 그림의 밝은 면에 놀랄 것이다. 강요배는 제주 4·3항쟁을 주제로 집요하게 작업해 왔다. 그러나 저항정신을 거칠게 드러내기보다는 은유로 쓰다듬어 왔다.

■ 민중미술은 폭력적인 1980년대 군사정부에 저항해 들불처럼 퍼져나간 미술양식이다.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처럼 힘차고 직설적이고 거친 화법으로 민중적 분노와 시대적 고뇌를 사회에 뿌렸다. 메시지 성격이 강한 예술의 숙명이 그렇듯이, 민중미술은 87년 민주화 투쟁에 승리하자 소임을 다한 듯 역사에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전개된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붕괴도 한 원인이 되었다. 작가들도 생활을 위해 하나 둘 제도권적 미술로 복귀했다.

■ 우리 민중미술 정신은 1920년대의 멕시코 벽화운동에 닿아 있다. 투박하지만 매우 독창적인 그 벽화들은 멕시코시티미술관에 보존되어 그곳을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고 있다. 벽화운동의 세 주역은 리베라, 오로츠조, 시케로스다. 시케로스가 제작한 벽화는 3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복원되어 관람객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우리 민중미술은 멕시코의 역동성과 풍부한 표현성은 수용했으나,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았다.

■ 민중미술 작품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 400점 가까이 소장돼 있다. 2000년대 들어 가나아트센터가 200여 점을, 작가들이 150여 점을 기증한 덕분이다. 그러나 시립미술관은 두 차례 기증 작품전을 통해 소규모로 공개했을 뿐, 민중미술에 별 애착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나 미술계는 이제 본격적인 ‘민중미술관’을 별도로 세워야 한다. 치열했던 80년대를 증언하고 회상 시켜 줄 민중미술관 하나 없는 것은 쓸쓸하고 잘못된 일이다. 미학의 문제를 떠나, 민중미술만큼 분명하게 역사적 교훈을 전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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